#사례1. 지난해 7월 한 시중은행장은 사석에서 “수익성을 생각하면 우리도 외국금융기관처럼 ‘계좌유지수수료’를 도입해야겠지만 우리 은행이 먼저 하지는 못하겠다”며 “다들 은행을 공공기관으로 아는데…”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올해초. 뉴브리지캐피탈이 1대 대주주인 제일은행은 계좌유지수수료를 도입했다. 수익보다 관리비용이 더 많은 소액예금에는 이자를 주지않고 수수료를 물리는 이 제도에 대해 ‘어린이의 저축의지를 꺾는다’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는 등의 비판여론이 잇따라 제기됐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국민 주택 한미 외환 한빛 서울 등 대부분 은행들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1. 대출세일 시대
2. 쏟아지는 신상품
3. 신용 카드 서비스
4. 인터 넷 빌링
5. 인터 넷 뱅킹
6. 바뀌는 투자열풍
7. 바뀌는 보험시장 판도
8. 프라이빗 뱅킹 확산
9. 투자은행업 등장
10. 글로벌체제 편입
#사례2. 연초 제일은행이 하이닉스반도체(당시 현대전자)에 대한 회사채신속인수를 거부할 때 금융계 안팎에서는 ‘돈만 안다’는 비난이 높았다. 금감위와 갈등도 빚었다. 그러나 최근 하나은행이 현대건설 지원을 거부하고 나설 때 여론의 비난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애널리스트들은 하나은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수익성, 주주이익극대화, 경쟁력제고라는 3대 모토가 국내 금융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이는 외국의 금융기관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패러다임의 변화’다.
▼관련기사▼
- 재경부 "외국자본 지나친 영향력 걱정"
이같은 변화는 어떻게 촉발됐을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국내 진출을 꼽는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상륙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곧 ‘글로벌논리의 무대’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제일 외환 국민 신한 한미 하나 주택 등 국내 주요은행들의 1대 혹은 2대 대주주는 외국계로 변했다. 지난해 두차례에 불과했던 이사회를 올 상반기동안 6차례나 연 한미은행의 ‘파격적 행동’에는 1대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주택 합병과정에서 각각 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삭스와 ING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외국계 주주들은 과거 대주주와 달리 경영전반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주주이익과 효율성의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경우 6월 현재 19개 외국계 증권사가 사실상 발행시장과 해외영업 업무를 장악한 상태다. 선진경영기법으로 무장한 이들은 일반인을 상대로한 소매영업도 확대할 움직임이어서 국내 증권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푸르덴셜 메트라이프 ING 등 대형 외국계 보험사들은 우리 보험업계에는 생소한 종신보험이라는 알짜영역을 독점하면서 큰 이익을 냈다. 외환위기 직전 0.2%에 불과했던 이들 외국 보험사들의 시장점유율은 현재 8%가까이까지 수직상승한 상태다. 국내 보험업계도 살아남기 위해 변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병연(金炳淵)은행팀장은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진출이 우리 금융기관들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글로벌경쟁에 대한 위기감을 크게 고조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경제종속’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지만 외국계 금융기관은 앞으로도 국내시장에 꾸준히 진출, 한국을 글로벌경쟁의 무대로 탈바꿈시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끝-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