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불만과 개혁 시사 발언이 있은 직후 언론사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세금 부과를 첫 단계로 하여 이제 다음 단계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난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뒤에 현 정부가 내세운 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에 걸맞은 하나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충격도 크고 논쟁이 치열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언론사도 기업인 이상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고 세금도 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라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세금에 한해서만 말한다면 조세 정의에 입각한 조치라는 법적인 주장을 나무랄 것도 못된다. 그러나 재량권이 행사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갖고 있는 세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세무조사를 받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이 가는 점이다. 부과된 액수의 당부당(當不當)과 일부 사주들이 고발된 문제는 법정에서 판가름날 것이기 때문에 기다려보면 될 일이다.
문제는 언론사라는 특수기업이 갖는 정치적 성격에 있다. 시민들의 언론 선택은 매일매일의 국민투표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권은 언론의 향배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관심은 산업화시대 이전에 누구든지 자기 손으로 팸플릿을 만들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던 18세기와는 사뭇 달라서, 현대의 기업화된 언론에 연관된다. 이 때문에 언론기업과 정치는 교묘한 상관관계 속에서 굴러간다. 이윤 획득을 위하여 언론은 때로 선정적일 수 있고, 권력강화를 위하여 정치는 때로 언론을 통제해 보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관관계의 긴장 속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언론에 대한 불만은 언론의 기업적인 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영향력에 대한 압력은 돈이라는 ‘실탄’을 박탈하면 된다는 것으로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이것이 조세정의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사안의 성격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법을 비호하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그런데, 과연 이번 언론파동의 성격이 정치적 의도와 무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정치인들이 만약 진실로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이는 정치적 백치(白痴)이거나 아니면 정치적 색맹(色盲)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설마 그런 수준의 정치인들이 국정을 좌우하고 있으랴 싶다. 누가 보더라도 상식 있는 시민으로서 이 시점과 이 상황에서 전개된 언론파동이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총체적인 국가경영에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 전략적 요충지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 역사 뒤집기에 연관되는 세력으로 점거되고 유일하게 고도처럼 남아 큰 대항적 영향력을 유지해 온 것이 비판언론이었다. 이것만 제압하면 천하평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전략에 따른 전술도 지지율이 낙엽처럼 떨어져가던 시점을 택했다. 인천상륙작전을 보는 듯 절묘하다. 그러나 물론 집권세력도 이것으로 비판언론 기업이 빈사상태에 빠진다하더라도 비판언론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볼 만큼 우둔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2년여에 걸쳐 전개될 소송기간에 예리한 붓끝은 무뎌질 것이고, 그 조건에서 얻어진 시간으로 정치적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인 듯하다.
그 정치적 목적이란 어떤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 이것을 밝혀줄 바보는 없을 것이다. 정권 재창출, 연방제 또는 연합제 개헌, 김정일 답방 등이 목적이라고 하는 소리들이 무성하지만 검증할 수 없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적으로 봐서 한가지는 분명하다. 대북정책을 생각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정부는 모든 것을 걸어왔고 그것에 정치적 운명도 걸어왔다. 이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이번 언론사태이다.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가 지난해 8월 언론사 사장단 북한 방문에 참가하기를 거부한 것은 이 점에서 정면으로 정권에 도전장을 낸 셈이었다. ‘정치적 월드컵’은 막이 올랐다. 누가 이기든지 지든지 둘 중 하나 뿐이다. 막간에 정계개편의 드라마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제2의 건국을 위해 여름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이렇게 우는가 보다.
노재봉(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