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인문사회]역사 왜곡-은폐 촉구하는 책 잇따라 출간

입력 | 2001-07-13 18:41:00


《인간이 서술한 역사는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시끄러운 요즘 미국인과 한국인이 자신들의 역사 왜곡과 은폐를 파헤치며 반성을 촉구하는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수정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역사 서술에 대해서도 되돌아 보고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

◈20세기 한국의 야만

◇이병천 조현연 엮음 384쪽 13800원 일빛

최근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을 수정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대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간단하다. “역사를 서술할 때 어떤 내용을 기술할 지는 집필자가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 역사 책에도 ‘집필자의 판단’으로 축소된 사실들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20세기 한국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의 혈흔으로 얼룩진 ‘폭력의 역사’였지만 지금껏 누구도 툭 터놓고 얘기하길 주저했다. 이 책은 우리조차 외면했던 고통의 역사를 상세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위안부’에 대한 언급이 교과서에서 배제된 것을 비난한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리 역사교과서를 먼저 펼쳐보자고 이 책은 권한다. “여성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됐다”고 한 줄 적혀있을 뿐이다.

이 책에는 열한살짜리 소녀들까지도 성노예로 전락해 정신병자가 되거나 급기야 수치심에 자살한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왜 ‘위안부’라는, 의미도 불분명한 단어를 사용해 역사를 숨기려 하느냐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조금 아프더라도 ‘성노예’라는, 일제의 악랄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어를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상기하자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이 책은 20세기 한국 역사의 모든 환부에 메스를 들이댔다.

정치 및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던 일제 군부는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을 국민 통제의 기틀로 삼으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조선인 ‘폭도’가 일본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는 등 유언비어를 퍼뜨려 ‘반(反)조선’ 감정으로 일본 국민을 하나되게 조장했다. 그리고 7000여명에 달하는 현지 조선인을 무참히 학살했다. 이 역시 우리 역사교과서는 자세히 조명하지 못한 사실이다.

이 밖에도 6·25 당시 자행됐던 민간인 학살, 주한 미군 범죄 55년사 등 ‘아픈’과거의 청산을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실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책은 피딱지 아래 가득찬 고름을 짜내고 쓰린 상처를 소독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은 아프지만 이제 그만 새살이 돋게 해야하지 않는가. ‘평화와 인권의 21세기를 위하여’라는 부제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skkim@donga.com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

◇제임스 W 로웬 지음 이현주 옮김 448쪽 13000원 평민사

역사가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1492년 기준으로 아메리카 역사를 구분하고 콜럼버스를 미국 최초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미국의 역사교과서는 콜럼버스에게 평균 800단어를 사용하면서 2쪽 반 정도를 할애해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1492년 이전, 콜럼버스의 도착에 앞서 다른 대륙 사람들이 이미 여러 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미국의 역사교과서는 유럽의 세계 점령 원인과 과정을 생략한 채 단순히 경건하고 영웅적인 콜럼버스의 초상만 그리면서 미국인 자신을 위대한 백인 압제자와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미합중국이 처음으로 정착된 해는 언제인가?” 미국 역사교과서를 배운 학생들은 당연히 “1620년”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대답에는 그 전에 아메리카에 살았던 인디언이나 스페인인의 정착은 생략된다. 미국의 역사교과서는 그들의 최초 정착지를 평화적 정착에 성공했던 뉴잉글랜드 지방이라 가르치지만 그 전에 유럽인이 인디언을 몰살시키고 정착했던 버지니아 지역의 역사는 교과서에서 지워버린다.

미국 최초의 통합된 주(州) 역사교과서인 ‘미시시피:갈등과 역사’의 집필자로 현재 미국 버몬트대 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12권의 대표적인 미국 역사교과서를 분석해 교과서에서 가려진 진실을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분의 5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역사에 대해 관심을 전혀 갖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라는 것이다.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던 헬렌 켈러를 시각과 청각 장애자라는 육체적 결함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영웅으로만 만들고, 1차대전에 참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전후 국제연맹을 결성했던 영웅적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인종분리정책을 주도하고 외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주도했던 사실은 지워버리는 것이 역사교과서라는 것이다.

10년 연구 끝에 이 책을 저술했다는 저자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해 책을 마무리한다.

“미국인이 자신의 자유를 안전하게 하거나 위험하게 만드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khc@donga.com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