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요즘 나는 글쓰기가 싫다. 가급적이면 말도 아끼려고 한다. 세상 현상을 보고 느껴 글로 써서 전하는 직업인 신문기자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싫다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정말로 요즘은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내 글을 어느 한쪽 편에 치우친 글로 보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현재 쓰는 글이 한 쪽 편을 드는 건 아닌가 우려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독자들은 당신만 떳떳하게, 중립적 입장에서 글을 쓰면 되지 우리들이야 당신 글을 편가르기 식으로 보지 않는다고 위로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말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든 읽는 사람이든 우리는 요즘 어떤 편가르기 심리에 함몰돼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타인의 행동까지 한쪽으로 몰아가는 데 익숙해진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라가 온통 보혁 등 이념으로, 여야 등 정파로, 그리고 동서의 지역으로 양단된 것처럼 찢어져 피아(彼我)를 나누고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은 상대가 어떤 논리를 대든 꺾으려 하지 않는다. 이념이나 정파, 지역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의견은 철두철미 배척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중간지대, 중간계층, 중간의견이 존재할 수가 없다. 끈의 한쪽 끄트머리만 잡고 집착하며 다른 부분엔 완벽하게 눈을 감아버린다. 스스로 설정한 ‘극단의 함정’에 빠졌다고나 할까.
문제는 그런 극단적 심리가 바로 과격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현상의 여러 측면 중 한 부분만 옳다고 악착스레 고집하는 정도를 넘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한 증오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물리쳐 타도할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정치권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지더니 최근엔 사회 각 부분으로 그것이 옮아가고 있다.
정치권의 분열현상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2001년 벽두 김대중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영수회담이 막말과 욕설만 안썼지 사실상 대판 싸움으로 끝난 후 7개월이 다 되도록 여야는 사생결단 극한대결의 자세를 조금도 버리지 않았다. 사사건건 상대를 상처내고 욕보이며, 절대 못믿을 집단으로 국민에게 투영시키는 데 정치의 모든 시간을 허비했다.
여당이 금과옥조처럼 외는 ‘정권재창출’이나 야당이 노리는 ‘정권탈환’의 구호에 묻혀 자기들 스스로 다짐한 ‘국민 우선정치’와 ‘민생정치’는 하얗게 빛이 바랬다. 여야당 대변인들이 쏟아내는 성명과 논평은 야비하고 저열한 비논리적 욕설로 변한 지 오래됐고 차기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후보라는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그에 가세했다.
심각한 것은 여야 모두 상대를 꺾기 위해서라면 망국적 지역감정과 색깔 덧씌우기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라와 국민이 갈가리 찢어져 결국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건 이미 뒷전으로 제쳐놓았다. 다음 대선에서 상대당 표를 깎고 자기당 표를 늘리는 데에만 여야 모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어떤 수를 쓰든 다음 정권을 잡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서 정치권 전체가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런 식으로 정치권이 만들어내는 책략적 언동에 상당수 국민이 최면이라도 걸린 듯 따라간다는 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처럼 정치권의 편가르기를 욕하면서 국민들도 같은 심리상태에 빠져들었다는 얘기다. 많은 국민이 특정 사안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따지고 분석하기보다 사안을 ‘정권적 시각’에서 보거나 반대로 ‘야당적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판단의 전도 현상에 휩쓸렸다.
바로 그같은 정파적 시각에다 이념과 지역의 문제가 함께 버무려지며 이제 국민들은 세상을 전혀 딴판의 눈으로 보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정책적 선택의 문제에 불과한 것을 선악을 재단해 하나를 척결해야 하는 문제로 착각해 스스로의 마음에서는 물론 생각이 다른 국민간에도 내전을 벌이는 듯한 혼돈에 빠지게 한 것이다. 극단에 선 두 의견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정치권도 국민도 하지 않는 바람에 편가르기 혼란이 더해가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지금은 화해 타협하며 나라의 바른 방향을 잡을 때라고 쓰려다가도 그러는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또 물어올 것만 같아 나는 요즘 글쓰기가 싫다.
민병욱min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