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와 인연을 맺은 지 60여년. 갈대밭을 옥토로 바꾼 의지와 근면으로 겨우 자리를 잡은 이곳에 소련 해체 후 민족주의의 대두와 시장개혁 등으로 격변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민족으로선 또다시 ‘시련’을 맞은 셈.
1937년 스탈린의 지시로 극동에 거주하던 한인 20만명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것이 중앙아시아 한인사의 시작이다. 격변의 와중에서도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한민족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중앙아시아 한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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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외곽의 벡테미르 마을. 2만여명의 한인동포(고려인)가 모여 사는 이곳은 인근에 있는 ‘김병화 협동농장’ 때문에 한인마을로 불린다. 김병화씨(74년 사망)는 갈대밭이었던 이곳을 논으로 만들어 옥토를 일궜다.
하지만 지금 농장은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다. 카자흐인 두라쿠 우라즈베크(64)는 “과거에는 농장 농민의 90%가 고려인이었으나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제는 농장 대표도 우즈베크인이 맡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삶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민족주의가 대신 메우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하자마자 러시아어 대신 고유 민족어를 국어로 삼았다.
“지금까지 러시아어만 알면 됐던 고려인이 앞으로 주류사회에 진입하려면 모국어인 한국어와 국어인 우즈베크어, 공용어인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 등 다른 외국어까지 적어도 4가지 언어는 알아야 합니다.”
타슈켄트 한국교육원 주강태 원장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현지 동포의 모국어 교육을 위해 설립된 교육원은 최근 우즈베크어와 카자흐어 등 현지어 교육과정을 급히 만들었다. 한때 언어 장벽에 부닥친 상당수의 고려인이 러시아로 떠나는 등 동요도 있었다. 그러나 남은 고려인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겠다는 각오를 굳히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을 맞은 뒤 “우리가 모든 것을 차지해야겠다”는 다수 민족의 욕구가 점점 두드러지고 있는 것도 소수 민족인 고려인들을 좌절케 하고 있다. 알마티 한국교육원의 정금배 원장은 “과거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각계에 진출하던 고려인들의 활약이 지금은 상당히 위축됐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계 인사를 찾기는 아직 힘들다. 하지만 한국의 위상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의 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인태씨. 그는 비정부기구인 아시아문화개발협력기구(IACD)에서 이곳으로 파견돼 왔으며 5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 대학은 올 9월 정식으로 한국어과를 만들 예정.
손혜숙씨(여)는 사마르칸트 중심가의 제1공화국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 우즈베키스탄에는 모두 17명의 KOICA 단원이 나와 한방 등 의료 활동과 농업기술 태권도 한국어 컴퓨터 등을 교육하면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고 있다.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대학에는 한국 관련 학과가 설치돼 있다. 해마다 1만명이 넘는 현지 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으로 떠난다.
한국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교민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600여명, 카자흐스탄에는 150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무역업이나 여행업 식당 등 자영업을 한다.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