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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스포츠]'허슬러'

입력 | 2001-07-16 18:36:00


유토피아는 말뜻 그대로 이 지구상에 없는 ‘꿈의 세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과 그것의 실현을 위한 줄기찬 노력이 곧 유토피아란 말이다.

‘경쟁의 연속’이라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출세든 숭고한 가치를 위한 것이든 그 당사자는 가히 종교적 수행자 못지 않은 길을 걷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의 상황을 열등감이나 치기로 외면하거나 거역을 하는 게 아니라 묵묵히 그것에 응전하는 것. 비록 그 결과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실패를 뻔히 내다보면서도 한발짝 내딛는 그 역정이 그가 추구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 폴 뉴먼의 싸늘한 냉소와 스산한 눈빛이 장면마다 살아있는 로버트 로센 감독의 61년도 판 당구영화 ‘허슬러’도 도덕적 설교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바로 위와 같은 결론이 난다. 물론 이 영화는 ‘경쟁을 통한 자아 발견’식의 상투적인 감상주의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도전에 대한 응전의 진솔한 예를 찾는다면 이 영화를 빼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컬러 영화의 전성기가 활짝 열릴 무렵에 로센 감독은 떠돌이 내기당구꾼 에디 펠슨의 인생을 흑백의 필름에 예리하게 담아냈다. ‘패스트’라는 별칭 그대로 매우 재빠르고 정교한 이 당구꾼은 그러나 미네소타 뚱보로 불리는 천적과의 사투 끝에 패배의 쓴잔을 마신다.

그 과정을 감독은 아주 냉랭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어떤 점에서 감독은 대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밤의 낙오자들에 대하여 조금도 애정이 없는 듯 보인다. 카메라는 언제나 서너걸음 물러서 있으며 그 누구도 ‘인간적’인 농담이나 미소를 띠지 않는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액터스 스튜디오’가 배출한 숱한 명배우 가운데 이른바 ‘눈빛 연기’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한 폴 뉴먼이 주인공을 맡았으니 아마도 로센 감독은 그리 수고를 들이지 않고 영화의 옥타브를 두세칸 낮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당구대 위의 남루한 승부사들이 예고된 파멸을 향하여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전과 응전의 이중 모순이 빚어내는 인생의 승부를 흠칫, 놀라며 깨닫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는, 30여 년이 흐른 후, 로센 감독과 폴 뉴먼을 위하여 이 영화의 속편 격인 ‘컬러 오브 머니’를 바쳤으니 두 편을 동시에 감상하는 것이 여러모로 제 격.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