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여권의 구도변화를 위한 정국구상에 돌입했다는 징후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내 소장파 의원들의 당정쇄신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그동안 가뭄과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응답을 미뤄왔으나, 9월 이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응답을 해야 할 상황인 때문이다. 정기국회에 돌입할 경우 여권의 진용변화는 물 건너 가게 된다.
그러나 여권 내부를 결속시키고 내년 지방선거 및 대선까지 대비하는 당정쇄신의 구체적 내용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김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9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비공개 단독회동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전후 사정에 연유한다. 두 사람은 회동에서 단기적으로는 당정개편으로부터 장기적으로는 내년 대선전략에 이르기까지 깊은 얘기를 나눴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대통령이 최근 측근들과도 상의를 하지 않은 채 정국구상에 참조가 될 만한 객관적인 자료만을 간간이 보고토록 지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권 내에서는 김 대통령이 30일부터 시작되는 여름휴가 기간 중 자신의 구상을 정리한 뒤 8월15일을 전후해 공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의 정국 구상의 내용에 대해서도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당 대표,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 등 이른바 ‘빅 3’의 교체여부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내 소장파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차원의 정국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김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 승리까지를 겨냥한 보다 큰 그림의 정국 플랜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자민련과의 관계정립 문제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장 자민련과의 합당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같은 의지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당정 쇄신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김 대통령의 복심(腹心)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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