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마음껏 위력을 뽐내는 계절. 가만히 앉아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지만, 오디오의 볼륨을 올려놓고 눈을 감으면 어느새 눈앞에 푸른 수평선이 펼쳐진다.
음악평론가, 연주가, 음반기획자, 공연기획자 등 음악계 인사 4명이 ‘여름철에 함께 벗하며 더위를 잊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작품’을 추천했다.
◇한상우(음악평론가)〓드뷔시의 교향시 ‘바다’가 더위를 잊는 데는 제격이다.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바다의 유희’ ‘바람과 바다의 대화’ 등 악장마다 표제가 붙어 있다. 인상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답게 바다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정밀하게 그려냈다.
강을 묘사한 작품들도 여름에 감상하면 시원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요한 시트라우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헨델 ‘물 위의 음악’ 등도 좋지만,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는 발원에서 바다에 이르는 강의 정경을 탁월한 솜씨로 묘사하고 있다.
◇김지연(바이올리니스트)〓여름이면 차이코프스키 ‘1812년’ 서곡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야외 음악축제에서 연주되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대포의 실제 발사음과 함께 연주되는 장엄한 피날레를 들으면 여름의 끈끈함이 날아 가버리는 것 같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 3악장도 여름의 ‘밤 음악’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요정의 춤 같이 정교한 리듬과 환상적인 분위기가 어울린다. 나의 대표 음반을 묶어 최근 내놓은 편집음반 ‘chee-yun’에도 이 작품이 실려 있다.
◇정재옥(공연기획 크레디아 대표)〓기타리스트 무라지 카오리가 연주하는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즈 협주곡’이 상큼한 여름 분위기를 전해준다. 이베리아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미아 정이 연주하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도 좋다. 자칫 신경이 곤두서기 쉬운 여름에 이 작품을 들으면 한결 차분하고 넉넉한 여유가 생긴다. 내면의 열정과 신앙을 차근차근 음으로 분출해내는 미아 정의 예술혼이 느껴진다.
◇서동진(워너뮤직 코리아 클래식부 부장)〓먼저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집을 권한다.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차르트보다 한 뼘쯤 소박하고, 베토벤 보다 한 자쯤 여유로운, 팔베개를 하고 들을 만한 피아노곡들이다.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도 빼놓을 수 없다. 전편을 휘감아 흐르는 문학적인 운치와 정갈한 음색은 여름밤에 이 곡 음반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발췌음반 대신 꼭 대사가 있는 ‘전곡’을 감상하시길.
▽사족〓기자는 여름에 레스피기 ‘새’ 모음곡과 ‘고대 무곡과 아리아’ 3번 모음곡을 추천한다.
화려한 목소리로 여름 아침을 장식하는 새들의 노래소리, 타일과 흰 석회칠로 장식된 지중해변의 건물에서 꽃향기를 맡는 것 같은 정취가 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집 D 899도 여름에 자주 듣는 작품이다.
푸른 이파리를 따라 구르는, 강을 따라 출렁이는, 샘에서 투명한 햇살을 반사하는, 물의 온갖 청신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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