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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경북 예천 의성포/내성천변엔 '주막'도

입력 | 2001-07-18 18:44:00

의성포 물도리동의 내성천


《물맛 좋기로 소문난 경북 예천(醴泉). 물줄기 세 개가 삼강리에서 만난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충북)의 금천, 그리고 안동댐을 지난 낙동강. ‘육지속의 섬’ 의성포 물도리동을 찾아 금빛 모래톱 비경에서 물놀이도 즐기고 삼강리 낙동강변 주막집에서 주안상도 받아 보자. 별미인 매운 오징어 불고기와 순대국도 맛보는 예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침 7시. 해는 벌써 산위로 솟은 지 오래건만 무제봉(해발 195m·예천군 용궁면 향석리)에 세운 팔각정 회룡대 아래 의성포(경북 의성과 혼돈을 막기 위해 예천군청이 ‘회룡포’로 이름을 바꿨으나 주민들은 의성포로 그대로 부름)는 안개에 휩싸여 보이질 않는다. 여행자 서너명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며 푸념만 늘어 놓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그리고 세 시간쯤 지났을까.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의성포의 자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섬이다. 동그랗게 돌출한 땅은 주변을 거의 한바퀴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과 강변의 금빛 모래톱으로 둘러싸여 마치 ‘육지속의 섬’을 보는 듯 했다. 그 모래사장 위로 드리워진 푸른 강물. 그늘막만 갖춘다면 한여름 물놀이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회마을 카마(보다) 물이 더 마이(많이)돌아나가는 거 같데이.” 안동에서 왔다는 한 촌로. “이 나이 묵두룩(먹도록) 이래(이렇게) 기막힌 곳을 옆에 두고도 니나내나(너나 나나)와 몰랐노.” 비경에 들떠 내뱉는 말소리가 경탄에 가깝다.

감나무를 울창한 마을에는 경주 김씨 아홉가구가 함께 산다. 주변은 참깨와 고추밭 그리고 논. TV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펼쳐진 이 곳에 하얀 백로 너댓마리가 유유히 날아와 물가에서 먹이사냥을 시작했다. 의성포의 아침 풍경. 평화로움 그 자체다.

비룡산 장안사의 범종각

무제봉 오르는 길에 천년 고찰 장안사(長安寺)를 만났다. 20여년 전 한 스님이 중창불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쇠락할 대로 쇠락했다는 이 절. 그러나 홀연히 찾아 온 스님은곡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날라 극락전 응향전을 해체 중수했다. 기와는 머리에 이고 흙은 등에 지고. 주민들도 감복해 불사를 거들었다. 비룡산 비탈의 스러져 가던 가람에 발길이 잦아들자 스님이 절을 떠났다. 올 때처럼 홀연히 걸망 맨채로. 올 3월 19일의 일이다.

“두타(頭陀)스님이세요. 공중을 나는 새처럼 아무 자취도 없이 훌훌 털고 떠나셨지요. 태백산 어디선가 출가때 세운 서원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계실겁니다.” 두타스님의 청에 공부도 중단한 채 흔쾌히 절살림을 맡은 현 주지 지정(智正)스님의 말. 자그만 산사지만 사형사제간인 두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 덕분에 불법의 향기는 어느 대찰에 비길 바가 아닌 듯 했다. 절입구에 적힌 안내글, ‘사바세계의 크고 작은 번뇌를 잠시 벗어두고 조용히 천년의 소리와 가신 선인들의 은밀한 말씀에 귀기울여 보소서.’ 그러기에 아주 좋은 절이다.

물도리동(물이 육지를 돌아 나갈 때 생기는 지형) 의성포를 훑고 흐르는 내성천은 금천과 합치고 다시 낙동강을 만나 큰 물이 된다. 삼강리(풍양면)는 바로 이 세 물의 합수처. 하류에 영풍교가 놓인 후 나루터와 나룻배 뱃사공은 사라졌고 대신 요즘은 다리 공사로 부산하기만 하다.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나룻터를 지키는 1300리 낙동강의 유일한 주막집 하나. 스레트 지붕의 두 칸짜리 흙벽집(15평)은 나무그늘 시원한 회화나무 옆에서 밀면 쓰러질 듯 기운 채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삼강리 나루터의 주막집

“45년쯤 됐나. 여기 온지가….” 마흔살에 와 지금도 주막을 지키는 ‘주모’ 유옥연 할머니(85). 논일 마친 정강섭씨(65)가 툇마루에 앉자 냉장고에서 꺼낸 찬 맥주 한 병과 잔 하나, 고추장과 건멸치를 쟁반에 담아 낸다.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는 나무그늘 찾아든 촌로의 객담이 소소하다. 연탄불 보일러 놓인 두 칸 주막에서 삼강리 나루의 번창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유할머니는 오늘도 소박한 술상을 낸다. 예천의 또 하나 이야깃 거리는 ‘세금내는 부자나무’ 두 그루.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거대한 소나무 ‘석송령’(石松靈·감천면 천향리)과 ‘황목근’(黃木根·용궁면 금남리)이라는 이름도 가진 팽나무로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당산목(堂山木)이다. 600살 석송령의 ‘재산’은 토지 2000평, 480살 황목근은 3650평. 석송령은 제사를 부탁하며 땅을 희사하고 숨진 한 마을유지의 뜻을 받들어 주민들이 공동관리하는데 수익으로 장학금도 준다. 황목근 소유 토지는 금원마을 50여호의 공동 재산. 마을주민의 적십자회비는 모두 황목근의 수익으로 충당한다.

summer@donga.com

▼찾아가기▼

①예천〓경부고속도로/음성IC∼3번국도∼금왕∼주덕∼충주∼수안보∼이화령(터널)∼문경/34번 국도∼용궁면.

②장안사및 팔각정〓용궁면소재지∼서울종묘 용궁대리점/우회전∼ 향석2리 안내판/우회전∼성지교 건넘/좌회전∼삼거리/회룡대 장안사 방향∼콘크리트 포장도(1차선) 가파른 언덕길∼주차장(장안사). 총거리 5㎞. 장안사 054-655-1400,1

③의성포 마을〓향석2리 안내판/직진∼삼거리/우회전∼다리 2개∼용주팔경 시비∼퐁퐁다리(구멍 뚫린 철판다리)∼의성포

④삼강주막〓33번 지방도/영동초등교∼의곡∼영풍교∼하풍∼삼강리/토끼굴에서 우회전.

⑤석송령〓예천읍∼28번 국도(영주 방면)로 7㎞∼삼거리/좌회전해 5㎞. 감천면사무소 054-652-6301

⑥황목근〓용궁면∼‘용궁역’ 기차역 뒤편 농로. 용궁면사무소 054-653-6301

▼생태여행 패키지▼

출발 22, 24, 29일, 당일코스(3만5000원). 의성포∼장안사∼삼강 주막집. 단골식당에서 오징어 불고기 시식. 승우여행사(www.seungwootour.co.kr) 02-720-8311

▼맛집/오징어불고기 '입안에 불 지른듯'▼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매운 맛은 복(伏)중에 더 살아나는 듯 용궁면소재지의 단골식당(읍부리)은 한 여름에 더 붐빈다. 청양고추를 잘라 넣어 ‘입안에 불을 지르 듯’ 맵고도 매운 시뻘건 오징어 불고기 덕분이다.

“시어머니가 36년, 그 뒤를 이어 제가 6년째 하고 있지요.” 대물림한 식당에서 음식맛도대를 이은 주인 김정애씨(38) 말. “매운 맛의 비결은 청양고추지요. 연탄 불에 즉석에서 석쇠구이를 하면 양념맛이 더 잘 살아납니다. 양념은 제가, 굽기는 올캐의 남편이 전문이에요.” 닭 돼지고기도 같은 요령으로 구워 내는데 술안주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이 집의 진짜 특미는 순대국. 돼지막창에 14가지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린 속을 넣어 삶아 낸다. 오징어 순대냐고 물을 만큼 부드럽고 담백한 것이 특징. “순대맛은 속에 좌우되는데 조리법만은 아직도 비밀이에요.” 지금도 순대속은 혼자서 만든다고. 순대국 국물은 돼지사골을 36시간 고아 쓴다. 순대 5000원 순대국밥 3000원. 불고기(오징어 닭 돼지) 한 접시 5000원. 두 사람이 한 접시면 넉넉하다. 용궁면사무소 건너편에 위치해있다. 054-653-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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