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병, 왕비병이 21세기 불치병이라던가?
우아, 도도, 푼수기를 겸비해야하는 약도 없는 병. 하지만 KBS 2TV의 ‘명성황후’를 보면 으아~ 공주병, 왕비병 앓기 정말 싫다. 왕비로 살다보면 없던 홧병이라도 생길 판이니까.
어렸을 적 알고 있던 명성황후는 곰보가 난 못생긴 얼굴에, 깡마른 몸매의 별 매력없는 여인, 결국 일본 사람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의 왕비였다. (그것이 다 일본 사람들이 퍼뜨린 헛소문이란 얘기도 있던데 사실일까?) 그러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뜨면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진정한 국모로 등극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독창을 하던 명성황후, 얼마나 멋졌나? 정말 아름다움과 당당함이 느껴지는 멋진 여자였다.
이러저러한 정보를 모아봤을 때 명성황후는 고종의 아내로 조신하게 산 왕비라기보다는 능력과 배짱을 겸비한 정치적인 왕비였던 것 같다. 근데 지금 드라마 속 명성황후? 으아~그야말로 ‘한국의 여인’이다.
‘한국의 여인’이라…
우리 고등학교 교가엔 이런 가사가 있었다.‘덕행은 신사임당, 문학은 허난설헌…’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자란 내가 요 모양으로 남편을 들볶으며 살아가는 걸 알면 신사임당 할머니와 허난설헌 할머니께선 기겁을 하실 것 같은데 음…어찌 됐든 ‘한국의 여인’이란 바로 그런 여인들을 말한다.
덕이 넘쳐 흘러 남편에게 화내는 일 절대 없고, 남편이 죽어라 바람 피워도 시기 질투 절대 안하고 누구를 원망하는 일도 없이 늘 자기 본분에 만족하는 여인. 거기다가 아들이라도 쑥쑥 낳아놓으면 더 존경받는 ‘한국의 여인’이 되는 것이다.
난 명성황후는 그런 고리타분한 ‘한국의 여인’과는 확실히 다를 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TV 속 명성황후(이미연)는 정말 인고의 여신, 덕행의 여왕이다. 대원군(유동근)이 아무리 사이코처럼 들볶아도 짹 소리 한마디 않고 눈만 깜빡깜빡하며 참는다. 고종이 영보당 이씨(정선경)랑 놀아나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그저 묵묵히 참아낸다. 전통적인 여인과 다른 점이라면 맨날 책을 읽는 지적인 여인이라는 것. 지난 주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으니 그제야 겨우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표현한다. 그것도 ‘청춘의 덫’ 심은하 이후 최고로 이쁘게… 아, 정말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스타일 아닌가? 조용하고 바가지도 안 긁는데다가 미모까지! 이제부턴 특유의 정치력까지 선보일 태세던데 그렇다면 말로만 듣던 지성과 미모???
전통적인 여인상을 파괴한 파격적이고 능력있는 여인상을 기대했다가 전통적인 부덕에다가 능력까지 겸비한 슈퍼우먼 만난 격이니 이거야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다.
명성황후가 평가절하된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21세기에 환생한 ‘한국의 여인’이 될 필요까지야…머리도 좋아, 인내력 끝내줘, 미모도 돋보여~ 평범한 한국 여자들 기 죽이러 나타난 것 같은 명성황후보다는 악다구니를 쓰면서 권력싸움을 하는 ‘여인천하’의 속물스러운 여자들에게 차라리 더 정이 가느니…한국 여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여라~
조수영 sudat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