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전국구 공천헌금 단가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9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전국구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자 이렇게 말했다.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매번 총선 때면 전국구 공천을 둘러싸고 무수한 ‘헌금설’이 정치권 주변에 나돌았다.
지난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민련의 경우 당과 인연이 없었던 재력가 출신이 전국구 당선권 내에 안착, 헌금설이 나돌았고 민국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공식적으로 선거자금을 모으기 힘든 야당 내에서는 전국구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당연시되기도 했다. 92년 민주당 공천과정에서는 당선권인 3분의 1에 해당하는 7명이 ‘헌금 케이스’로 지명됐고, 1인당 30억원의 헌금설이 나돌기도 했다. 또 전국구 공천을 원했던 한 재력가는 공천헌금으로 50억원을 냈으나, 당내 핵심인사가 이 중 20억원을 개인적으로 떼먹고 30억원만 당에 헌납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당시 야당의 한 인사는 “욕을 먹더라도 선거를 치르려면 최소한 200억원의 실탄은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공천헌금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이제 전국구 공천장사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인2투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정당이 순번을 정해 공천자를 발표하고, 유권자들이 정당에 투표해 정당득표율에 따라 순번대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경우. 순번을 둘러싼 밀실거래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유권자의 직접투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헌소지가 남는다.
또 다른 방식은 전국구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고, 유권자가 직접 후보를 선출하는 형태다. 이 경우 유권자가 직접 비례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에 순위결정 과정이 생략돼 돈 공천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특히 여야가 1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함량미달의 재력가들이 설 땅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당이 전국구 공천자들에게 ‘특별 당비’ 형식으로 돈을 요구하더라도 과거처럼 수십억원의 거액이 오가는 현실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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