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봄, 엄격한 경영 방식으로 소문난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갑자기 부하 직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등 온화하고 인자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그가 당시 6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1세의 중국계 텔레비전 부문 중역인 웬디 덩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머독은 직원들에게 좀더 좋은 인상을 주기 원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기업 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 전혀 바뀔 것 같지 않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엄격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한 경영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게 도와준 ‘인간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간 마음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한 최초의 과학적 시도가 바로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다. 진화심리학은 이미 국내에서도 활발히 연구 중이며, 21세기 과학의 새로운 화두이다. 인간 몸이 불확실한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진화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하는 상당히 진보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을 경영과 접목시켜, 인류 역사의 진화 과정과 인간 사회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고자 시도한 니겔 니콜슨의 ‘경영자 본능(Executive Instinct)’은 그래서 매우 진보적이다.
진화심리학의 대가로서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조직 관련 연구 주임교수인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자가 인간의 본능, 즉 사람을 움직이는 모든 것과 변화를 가로막는 한계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비즈니스 세계의 치명적인 실수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전통적 경영의 성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 골드만 삭스, 휴렛패커드, 페더럴 익스프레스, 매리오트 인터내셔널, 존슨 앤 존슨, 3M…. 2000년 2월 ‘포춘’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전망 있는 기업이다. 수많은 거대 기업 중에서 이들이 선정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 중심의 시스템’과 ‘가치’,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의 경영 이념에 있다.
경영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대단히 훌륭하고 새로운 경영 이론과 기법을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업의 수명은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경영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게을리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경영자와 일류 기업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최신 이론보다 오래 묵어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것들의 실천,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라고 저자는 말한다. 본능의 자연스러운 표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경영을 위한 필수 요소라는 주장이다.
미래 경영에 대한 훌륭한 이론적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는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간의 본능을 애써 통제하는 것이 경영이라고 여기는 현대 경영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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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정 웅(대림정보통신 대표이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