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 혹은 급격한 사회변동의 시기에 사회운동의 ‘이론’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에 몰입되기 마련이다. 이런 시기에 운동연구는 그 자체가 정책제안이자 노선투쟁이고, 선언이며 구호였다. 한국에서 사회운동연구가 이 같은 경향을 벗어나 학술적 분석의 방향으로 심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 후 학계에서는 특히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최근의 NGO에 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90년대 중반이후 학술적 분석▼
‘사회운동의 사회학’에 관심을 기울여온 나 역시 운동의 제도화, 운동의 일상화, 나아가 ‘운동사회’의 확대현상이 이 분야의 사회학을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키리라 전망하고, 보다 분석적인 연구를 강조한 바 있다. 그 덕분인지 최근의 운동관련 연구를 보면 ‘실천의 풍요’와 ‘이론의 빈곤’을 우려했던 과거의 경향이 크게 보완됐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양하게 등장한 근래의 이론들은 분석과 설명이란 이름 아래 역사적 구성물로서의 사회운동을 낱낱이 분해해 버리는 보다 원천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서구 근대과학의 방법론적 특성과도 결부된 이 같은 문제는 연구대상으로서의사회현실을 파편화함으로써, 대상의 진실에 다가서기보다는 오히려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사회현실 파편화 진실 왜곡▼
이런 ‘운동해부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당사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운동의 구축과정을 밝혀내는 ‘운동형성학’적 접근이 요청된다. 특히 사회운동의 이념과 가치, 쟁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역사와 제도적 맥락을 통해 해석해내는 방식은 중요한 과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환경주의 이념의 확산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운동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관과 결부된 새로운 지식의 출현과 확산 그리고 일상화의 과정을 파악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식사회학적 관점과 아울러 운동분석에서의 ‘역사성의 복원’이 수반돼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최근 폭증하는 NGO현상과 시민운동에도 현실적 관심을 두고 있다. 세계적 현상으로서의 NGO는 우리시대의 만병통치적 대안으로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를 재조직화하는 구심점으로서의 NGO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경향에 순응적 파트너로 작동하는 측면과 함께,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의 조류 속에서 ‘외형적 미국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운동과 그 조직이 빠르게 ‘시장화’되는 현실은 이런 경향의 일면이라 할 수 있다.
▼NGO-시민운동 새방향 찾길▼
시민운동과 NGO활동은 ‘조직의 성장’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한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 시민운동의 조직과 이념, 이슈, 행위양식 등의 시민적 적합성을 성찰함으로써 시민운동을 실질적으로 살찌울 수 있는 ‘적정(適正)시민운동론’을 모색할 시점에 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시민사회의 역사성과 다중적 특성에 관해 더 많은 분석적 관심이 요구된다.
조대엽(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