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단에서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집이 있다. 1998년 늦깍이로 데뷔한 이평재(41)씨의 첫 창작집 ‘마녀 물고기’(문학동네)가 그것이다.
이 책에 대한 평론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 평론가는 “족보 없이 튀어나온 문제작”이라고 평했고, 다른 평론가는 “아마 평론가들이 가장 쓰기 곤혹스런 작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성(魔性) 넘치는 상상력의 스펙트럼을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기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이 소설은 고아(孤兒)와도 같다. 판타지 신화 민담 고대문명을 날렵하게 주유하고 있고,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문학평론가 서영채씨는 이를 “너절할 일상을 가로지르는 강렬한 엑스터시의 섬광”이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에는 마녀물고기 거미인간 푸른고리문어 등 낯선 이미지들이 출몰한다. 때로는 코헨 형제의 영화 ‘바톤 핑크’를 짓누르는 몽환적 분위기를 풍기거나, 살점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베이컨의 초현실주의 그림과 같은 강렬한 환각을 제공한다.
하지만 세련된 옷차림으로 나타난 이씨의 모습은 기기묘묘한 작품 분위기와 딴판이다. 서글서글한 눈매 만큼이나 화통한 성격이었다. 그는 “기가 세다는 말은 듣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가 인터뷰 중에 ‘새롭다’는 말을 여러차례 썼다. “기질적으로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도 했고, “문학은 새롭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녀가 다른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이나, 다른 문인들과 일체 어울리지 않다는 것도 이런 성격 탓인 듯 싶었다.
그의 작품집이 돋보이는 것은 ‘새로움’이 자기 스스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이 굵고 상상력이 다채롭다는 점을 빼면 어느 한 작품도 소재나 스타일, 상상력의 모티브가 닮지 않았다. 책 날개에 있는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글쓴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자신의 성 정체성도 숨기고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단편 중에서 하나만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이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제 글이 어떤 특정한 경향으로 규정당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저 “제 소설이 파격적이고, 거침없고, 대담하게 보여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전부였다.
표제작 ‘마녀물고기’에 등장하는 먹장어(hagfish)가 떠올랐다. 제 몸뚱이를 나사못처럼 회전시키면서 물고기 아가미로 파고들어가 살을 갉아먹는다는 ‘마녀(hag) 물고기(fish)’. 이것은 상상력의 고갈로 신음하는 한국소설을 상상력으로 잠식해 들어가겠다는 작가적 야망이 투사된 이미지는 아닐까.
근황을 물었더니 이씨는 “요즘에는 손이 근질근질해서 못견디겠다”면서 창작의 신열을 호소했다. “요즘 머릿속에는 첫 장편소설의 구상으로 꽉 차있어 다른 일은 못한다”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 물었지만 “소설적 금기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작품이 될 것”이라고만 귀뜸했다.
그러나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소설가를 다룬 단편 ‘거미인간 아난사’에서 그가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의 틀에 얽매인 소설이 아니라 상상의 속도를 자유자재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쓰고 싶었다. 그것이 사이버 소설이면 어떻고 판타지 소설이면 또 어떻단 말인가”(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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