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 의대 서울중앙병원 이기업교수(46)는 클래식음악 마니아다. 음반을 들으면서 악보 넘기는 소리까지 구별해낼 정도다.
그렇다고 클래식음악만 듣는 것은 아니다. TV의 최신가요 순위를 외고 있으며 직원들과 노래방에 갈 때엔 이를 가르쳐 주면서 가요순위 1, 2위인 신세대 노래만 부른다.
이처럼 이교수에겐 ‘극과 극’이 공존한다. 이교수는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극과 극’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일부 환자는 “이교수가 불친절하다”며 병원측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이교수 만큼 늘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는 드물다고 말한다.
이교수는 환자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매달릴 경우 진료실에서 호통을 친다. 더러 얼굴을 붉히며 환자와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주위에선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면서 “이교수는 환자의 치료 성과가 좋으면 어린애처럼 기뻐하며 늘 환자의 진료비까지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9일 오후 서울중앙병원 12층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스승인 민헌기박사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왔다”고 말했다. 국내 당뇨병 분야 최고 원로인 민박사는 늘 제자들에게 의사들은 허명(虛名)에 집착하지 말고 오로지 연구에 매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 이교수는 이에 따라 전공의 시절부터 외국 권위지에 30여편의 논문을 실어왔다.
주위에선 이교수가 몇 년 내 ‘큰 일’을 낼 것으로 믿는다. 이교수가 현재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 중인 비만 치료제가 개발되면 세계가 놀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
현재 비만치료제는 △프로작 리덕틸 등 식욕억제제 △제니컬 등 지방 흡수 방해제 △갑상샘 호르몬 등 열 발산 유도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갑상샘 호르몬은 체내의 과다한 에너지가 지방으로 축적되지 않고 열로 발산토록 하는 것인데 갑상샘 항진증, 심장 부담 등의 부작용이 있다. 이교수는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체내의 과다한 에너지를 부작용 없이 열로 발산시키는 UCP 유전자에 주목해 이를 활성화시키는 약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동물실험에서 희망적 결과를 얻고 있다.
-당뇨병과 비만의 관계는….
“당뇨병은 이자의 베타세포가 파괴돼 생기는 1형과 혈당 조절 등을 하는 인슐린 호르몬의 기능이 저하돼 생기는 2형으로 나눌 수 있다. 국내에서 1형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 2형이다. 서양에서는 2형 당뇨병환자 중 비만인 사람이 70∼80%이지만 국내에서는 30%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런데 동양인은 유전자가 당뇨병에 취약해 조금만 살이 쪄도 병에 걸릴 위험이 큰 편이다. 식생활의 서구화로 패스트푸드, 달거나 기름진 음식 등을 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당뇨병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평소 이런 음식을 멀리 하고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을 하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 환자들은 ‘한번 당뇨는 영원한 당뇨’라고 믿지만 살을 빼서 완치되는 경우도 있다.”
-당뇨병은 왜 무서운가?
“당뇨병의 전형적 증세는 3다(三多), 즉 다음(多飮) 다갈(多渴) 다뇨(多尿)다. 그러나 증세가 전혀 없다가 갑자기 실명이나 콩팥기능 장애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뇨병이 무서운 것은 합병증 때문인데 성인 실명의 30% 이상, 투석받는 경우의 30% 이상이 당뇨병 탓이다. 사고 이외에 다리를 자르는 사례 중에서 절반이 당뇨병 때문이다. 97년에 전북 정읍에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당뇨병인 줄 모르고 있었다. 40대 이후 살이 찌면 당뇨병을 의심하고 혈당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당뇨병 환자가 명심해야 할 점은.
“‘명의가 죽어야 환자가 산다’는 말이 있다. 당뇨병 치료에는 명의나 ‘비방(秘方)’이 있을 수 없다. 민간요법만 200가지가 넘지만 장기적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중금속 중 일부는 혈당을 떨어뜨리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부작용이 큰 중금속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환자는 상태와 증세에 따라 식이요법, 운동요법 등에 따르면서 약을 복용하거나 인슐린펌프를 차야 한다. 동네 의사를 주치의로 삼아 꾸준히 치료하고 1년에 한 두번 정도 종합병원에서 합병증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지금은 완치제가 없지만 언젠가 나올 것이므로 그때까지 희망을 갖고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병을 관리해야 한다.”
stein33@donga.com
▼허리 34인치 이상 성인병 조심
비만인 사람은 당뇨병 뿐 아니라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병 뇌중풍 등 국내 사망 순위 1위인 혈관질환과 콩팥질환 간질환에도 걸리곤 한다.
의학자들은 한때 비만 환자에게서 왜 이런 성인병이 함께 생기는지 의문이라며 ‘X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최근 호르몬 대사의 장애가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대사 증후군’으로 부르고 있다.
뱃속에 기름기가 끼면 핏 속의 포도당을 간이나 근육에 보내는 작용 등을 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제 기능을 못해 이들 성인병이 한꺼번에 생긴다는 것. 이 때문에 ‘인슐린 저항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선 허리 둘레가 36인치 이상이면 대사 증후군을 의심하지만 국내에선 34인치 이상이면 해당된다고 본다. 복부비만 중에서도 내장과 혈관에 기름기가 많이 끼이는 ‘뱃속 비만’이 특히 위험하다. 아랫배보다 배꼽과 명치 사이가 불룩 튀어나온 사람이나 배를 만져 피부가 두꺼우면 당장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겉으로 질병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근육이 발달하면 포도당이 잘 활용되고 인슐린도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산책 빨리걷기 달리기 등 유산소운동과 근육강화 운동을 곁들이도록 한다. 또 술 담배 스트레스는 뱃속 비만을 유발하는데 특히 담배는 체중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뱃속만 기름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끊어야 한다. 가급적 오후 7시 이전에 저녁식사를 하고 그 이후에 허기를 느낄 경우 우유나 물을 한 컵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어떻게 뽑았나
동아일보사가 전국 15개 의대에서 당뇨병이 전공인 내과 교수 46명에게 이 부문의 베스트 중견의사 5명씩을 추천받아 집계한 결과 울산대 서울중앙병원 내과 이기업교수와 서울대병원 내과 박경수교수가 ‘당뇨병 부문 베스트 중견의사’로 선정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두 교수를 비롯해 상위 5명이 모두 서울대 의대 선후배 사이로 서울대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민헌기박사(현 한국병원)의 제자였다.
이기업교수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주치의로도 유명한 민박사는 서울대병원에서 당뇨병 부문의 토대를 닦았으며 제자들에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연구에만 충실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이교수와 함께 공동 1위로 선정된 박교수는 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의 당뇨병 관련 유전자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막강 당뇨병팀’으로 유명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추천을 덜 받았는데 이는 50대 초반인 이 병원의 이현철교수의 ‘그늘’에 가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현철교수를 추천한 교수도 적지 않았다.
병원별로는 서울대병원, 서울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상계백병원, 한강성심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의 순이었다.
◈ 당뇨병 부문 베스트중견의사
이름
소속 병원
세부전공
이기업
울산대
서울중앙
당뇨병
대사증후군
박경수
서울대
당뇨병 유전학
이병두
인제대 상계백
당뇨병
유형준
한림대한강성심
당뇨병 노인병
이문규
성균관대삼성서울
이자섬세포이식
윤건호
가톨릭대강남성모
이자섬세포이식
최동섭
고려대 안암
당뇨병
김성운
경희대
당뇨병 성장호르몬치료
정동진
전남대
골다공증당뇨병
백세현
고려대 구로
당뇨병
김현만
아주대
당뇨병
이명식
성균관대삼성서울
청소년형당뇨병
김인주
부산대
당뇨병
양세원
서울대(소아과)
어린이 당뇨병
장학철
성균관대삼성제일
내분비질환
임승길
연대 세브란스
골다공증, 뇌하수체질환,
갑상샘질환 ,당뇨병
하승우
경북대
당뇨병
양승원
서남대
내분비질환
이인규
계명대 동산
당뇨병
혈관합병증
차봉수
연세대
세브란스
인슐린 저항성
연구
안유헌
한양대 구리
당뇨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