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나 차관 같은 고위 공직자의 공·사생활은 늘 감시되어 마땅하다. 공직 기강은 ‘윗물’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청와대의 지휘하에 사정(司正)당국이 동원된 감찰 활동을 반대할 이유나 명분은 없다. 그러한 고위직에 대해 ‘공적인 업무태도와 사적인 생활자세 청렴도’ 등을 정례적으로 점검하고 인사에 반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정부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에 보도된 고위직 사정 문건과 관련하여 몇 갈래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건에 나타나는 것처럼, ‘조직관리 능력 및 신망도’ ‘주요 현안추진자세 및 실태’ ‘인사 운영 및 직원 근무 기강’ ‘대(對)국회 자세’ 같은 내용이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치자. 하지만 이른바 ‘착안(着眼)사항’이라는 항목에 나오는 내용들은 권위주의 정권시대의 음습한 정보정치를 연상케 하는 항목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를테면 ‘여야 정치인과의 친소(親疎)관계’ ‘재산이 많다고 알려진 경우, 그 조성 경위에 대한 소문’ ‘거주지 인근 주민 여론과 평가’ ‘평소 언론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추진 업무에 대한 홍보활동은 어떤 방법으로 하고, 언론의 평가는 어떤지’ ‘국회에서의 소신답변 여부’ ‘업무 보안실태’에서 심지어 ‘여자관계 성품 주벽(酒癖)’같은 것이 적시되어 있는 것이다.
정보보고 작성자의 자의성(恣意性)과 주관이 개입할 소지가 큰 항목, 여론과 소문 혹은 주변 평가에 치우친 듯한 항목, 처신과 요령을 공직자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듯한 항목이 눈에 띄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점검이 여과없이 사정 데이터에 입력되고 거기에 터잡아 인사가 이루어질 경우 필시 공정성에 의문을 부르고 정치성 사정 시비를 부르게 될 터이다.따라서 이번 고위직 감찰이 공정하고도 보다 투명한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감찰정보의 허실, 적부(適否)는 충실하게 검증된 이후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보요원들이 장차관 같은 고위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볼썽사납다. 경찰의 정보분야를 비롯한 사정기관 요원들이 공직자의 사생활을 뒤지고 약점을 캐는 것은 과거 정권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필연적으로 인권침해나 월권(越權)의 문제를 수반한다. 또 각 부처의 행정 사령탑인 장차관의 명운이 아직도 정보요원들의 탐문 보고에 달려 있다는 인식은 그 부처 공무원이나 국민이 보기에는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전근대적인 국가경영의 징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