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정한 ‘문명간 대화의 해’를 맞아 동아일보사가 1월1일자부터 게재하기 시작한 월요 시리즈 ‘13억 이슬람과의 대화’가 30회로 끝납니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그동안 19개국을 현지 취재, 이슬람권 국가의 화해 민주화 세계화 등 변화상을 현재진행형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께서 한국의 언론매체로서는 처음인 이슬람권에 대한 집중 보도에 대해 많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세계 3대 문명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현재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얻게 됐다는 평가였습니다. 시리즈 마지막 회는 ‘한국의 이슬람 상황’과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이슬람권 대사들의 시리즈에 대한 코멘트로 꾸몄습니다.》
“후 아크바르 후 아크바르 아시하드 알라 일라….”
금요일 정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한 중앙이슬람성원.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랍어 노래(아단)가 울려 퍼진다. 이곳은 197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각국의 이슬람 신자들이 성원을 메우기 시작했다. 수염을 기르고 흰 모자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옷을 입은 아랍인, 허름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 양복 차림의 백인, 검은색 안경을 쓴 흑인,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동양인 등…. 마치 인종 전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국 이슬람교중앙회의 신양섭 사무총장은 “400∼500명의 각국 이슬람 신자들이 금요일 이곳에서 예배를 보는데 대부분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주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이집트 모로코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근로자들이다.
중앙회의측에 따르면 한국인 이슬람 신자는 현재 3만4000여명. 중앙이슬람성원에서 종교 관련 일을 전담하고 있는 이행래 이맘(예배 집전자)은 “구체적 증거가 없기는 하지만 한반도와 이슬람의 만남은 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13∼14세기 고려시대. 당시 중국의 원나라 조정에서 실권을 쥐고 있던 중앙아시아계 사람들이 고려 조정에도 진출했다. 이행래 이맘은 “고려사에 ‘회회인(回回人)’으로 기술된 투르크계 위구르인인 이들은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고유 의상과 언어, 문화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와 이슬람 만남의 역사적 발자취
신라시대
-삼국사기, 처용 일행을 동해안에 나타난 모양과 의상이 괴이한 4명의 자연인으로 묘사. 처용가의 주인공이 아랍인이라는 설이 있음 -신라 고분에서 아랍의 유리기구, 비파, 구슬, 단검, 토용 등이 발굴
고려시대
-고려사, 1024년, 1025년, 1040년에 아랍 상인이 100여명씩 무리를 지어 수은이나 몰약(난초과의 교목으로 방부제로 쓰임) 등의 물건을 갖고 개경을 방문했다고 기록-고려 속요 ‘쌍화점’에 이슬람 사람이 ‘상화떡집 회회아비’라는 표현으로 등장
조선시대
-세종실록, 회회 노인과 회회 승도들에 대해 기술-조선 초 역법 ‘칠정산내외편’ 중 외편이 이슬람력 원리를 도입해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음
근 대
-1920년대 초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따라 피난온 투르크계 사람들이 신의주 혜산 평양 흥남 서울 천안 등지에 흩어져 생업에 종사-6·25전쟁에 참전한 터키군이 후방에 ‘앙카라 학교’를 세우고 전쟁고아를 양육. 전쟁이 끝난 뒤 대민 선교 활동
조선시대에 들어 유교에 의해 이질문화가 배척되면서 자취를 감춘 이슬람이 다시 한반도에 전파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20년대 구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투르크계 이슬람 신자들이 한반도로 피난 와 잠시 머물렀다. 또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군의 선교로 이슬람이 한국인 사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한국인 이슬람 신자들은 65년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를 만들었다. 76년 이슬람중앙성원이 세워진 뒤 부산, 경기 광주와 안양, 전북 전주 등에도 이슬람성원이 세워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슬람 신자들이 늘면서 각종 이슬람 관련 편의시설도 생겨났다. 이슬람 신자들을 위해 82년 중앙성원 건물에 정육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지방마다 1, 2곳의 이슬람 정육점이 있다. 한남동 이태원동 일대에는 이슬람 식당도 많이 생겼다.
예배가 끝나고 성원을 나가는 외국인들 틈에 한국인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대학생 때 종교 관련 수업을 들은 것이 계기가 돼 이슬람교도가 됐다는 안영기씨(45)였다. 그는 “아랍어를 몰라 이슬람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해 아쉽지만 마음만은 이슬람에 심취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슬람은 여전히 생소하다. 이행래 이맘은 “많은 한국인들이 이슬람교도가 테러를 저지르는 호전적인 집단으로 잘못 알고 있다”며 “이슬람은 순종 평화 등을 뜻하며 이슬람 신자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13억 인구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imsk@donga.com-끝-
▼시리즈를 마치며…4국대사에 듣는다▼
▼바예르 터키대사▼
이슬람 시리즈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동아일보는 다양한 이슬람 문화를 소개했다. 이는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슬람 문화를 이해시키고 상호 유대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으로 믿는다.
시리즈에서 언급된 것처럼 터키는 이슬람 신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지만 이슬람 국가로 불리지는 않는다. 터키공화국은 세속주의, 다당제 민주주의, 법에 의한 지배, 자유시장경제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국가 운영이 종교와는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터키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
19세기 이후 터키는 현대 세계를 대표하는 유럽을 지향해 왔다. 이는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국부(國父)에 의해 더욱 공고화됐다. 오늘날 터키는 주요 서방 기구들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후보국이기도 하다.
터키 여성들은 서구를 지향하는 개혁으로부터 특히 큰 혜택을 입었다. 그들은 대다수의 서구 국가들보다 빠른 1930년에 이미 참정권을 얻었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서양과 동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중동과 아시아,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터키는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모든 이웃 국가들이 상호 협력과 애정의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알라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동아일보 기자들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기사를 연재했다. 동아일보가 그동안 연재한 이슬람 시리즈는 동아일보 독자와 일반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종교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슬람은 이슬람 신자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또 한국인이든 아랍이든 구분을 두지 않는다. 이슬람이 갖고 있는 보편성과 또 인간의 곤경을 치유하는 치유력 때문에 영혼의 허전함을 채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으로 이슬람에 끌리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 두 곳을 영토 안에 두는 특혜를 입었다. 이런 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두 곳은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Grand Mosque)와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Pro-phet’s Mosque)이다. 모든 이슬람 신자들은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드린다. 또 전 세계의 모든 이슬람 신자들은 성지(聖地)인 메카의 그랜드모스크와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를 순례하고 싶어한다.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번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을 보여준 동아일보에 감사드리고 싶다. 경영진과 기자 모두에게 건강과 성공이 있기를 기원한다.
▼모센 탈레이 이란 대사▼
유엔이 올해를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한 배경에는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다. 하타미 대통령은 1998년 제53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명간 대립과 갈등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을 강화할 문명간 대화를 역설한 바 있다.
본인은 이러한 이란 정부의 화해와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현재 한국 불교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그와 문명간 대화와 화해 협력을 폭넓게 논의할 것이며 아울러 여러 가지 제언을 할 예정이다. 예컨대 그를 이란으로 초청하거나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이란의 종교계 인사를 한국 불교계가 초청하는 문제 등도 논의할 것이다.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지 2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재 이란에서는 이슬람 사상과 민주주의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종교적인 민주주의의 수립이 그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이슬람의 종교 원리를 융합시키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란과 한국은 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여러 부문에서 관계를 보다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두 나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정치 분야에서도 두 나라는 40년 이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점에서 두 나라의 우호 증진을 위해 한국 국민의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보다 확대되길 기대한다.
▼야히아 알 와하비 오만 대사▼
동아일보가 게재한 이슬람 세계 19개국의 근황과 문화 유산에 대한 시리즈 기사를 읽는 것은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이번 시리즈는 오랜 기간 잘 준비된 현장 중심의 기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오만을 다룬 기사는 국왕 카부스의 선정(善政)에 대한 정밀한 평가와 그가 이끈 ‘현대화 르네상스’를 다각도로 조명한 것이었다. 나는 오만을 깊숙하게 이해하고 소개한 동아일보의 기사를 읽으면서 감사의 마음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고국 오만은 따스한 인간미를 갖춘 국민이 역동적인 미래의 경제를 창출해 내고 있는 곳이다. 오만과 한국의 유대가 더욱 깊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