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5일 수도권 집중호우로 가장 많은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의 수해는 무분별한 난개발이 초래한 ‘인재(人災)’임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시립대 이수곤(李壽坤·토목공학) 교수가 신림 6, 7, 10동 일대의 수해 현장을 점검한 뒤 작성한 지반재해위험지역 현황과 피해지역의 분포도가 대부분 겹친 데서 확인됐다. 따라서 집중호우에 대비해 사전에 충분한 예방대책을 세우지 못한 서울시와 일선 구청의 책임론 문제가 집중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지질형태와 경사도, 계곡 유수량, 식생분포도 등을 토대로 작성된 지반재해위험도는 수해발생시 대형사고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현황을 미리 점검해볼 수 있는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수해의 원인은〓이 교수팀이 23일 신림6, 10동 일대의 지반재해위험지도를 작성해 본 결과 이번 피해의 직접적 원인은 산사태로 인한 토사의 대규모 유출로 드러났다. 엄청난 토사유출이 배수구를 막은 데다가 떠내려온 자동차까지 겹쳐 침수피해가 증폭됐다는 것.
토사유출의 결정적 원인은 신림10동 고지대에 조성된 4475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 이 지역의 재개발로 인해 임야가 대폭 줄어들었고 주변 도로 포장으로 인해 땅의 물흡수율이 떨어지면서 이로 인한 토사 유출면적이 넓어졌다는 것.
특히 시흥∼신림간 도로가 90년대초 개통되면서 신림동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몰려드는 등 난개발이 이뤄졌지만 정작 흘러내리는 빗물을 담아낼 하수관거의 용량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 교수는 “흘러내리는 수량의 증가와 유속 또한 빨라져 씻겨내린 토사의 양 또한 많아졌다”며 “결국 많은 토사의 유출이 배수구를 막았고 이로 인한 물의 역류로 침수피해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아파트단지에 저지대인 신림시장을 잇는 능선의 경사도는 33도로 급경사지역이어서 빗물 유속을 빠르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신림10동에서 피해를 본 조모씨는 “이번 수해로 사람 무릎높이 이상의 토사가 집을 덮어 주민 4명이 사망했다”며 “아파트 건설 이전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산꼭대기 지역에 연수원과 대단위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이런 참사가 빚어졌다”고 흥분했다.
▽관악산의 암벽 특징〓관악산은 전체가 화강암이며 바윗덩어리 위로 1∼1.5m 정도의 흙이 덮어져 있다. 그러므로 30도 정도의 경사면에서는 큰비가 올 경우 비는 바윗덩어리와 흙 사이로 흘러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책〓서울시와 일선 구청이 재개발계획을 세울 때 사전에 재해위험지역에 대한 별도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산허리를 잘라낸 아파트 재개발에 의해 사실상 주변 지형이 바뀌었는데도 일반 건축물에 준해 건축 및 준공허가 등이 나온 것은 무원칙한 도시계획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이 교수는 “앞으로 큰비가 내린다면 현재 신림동의 배수구 용량은 어림없는 수준”이라며 “저지대 침수를 막기 위해 하수관거와 배수로 용량을 크게 늘리는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이나 홍콩처럼 재개발 전에 재해위험지역을 분석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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