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루슨트 테크놀로지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통신장비 업종의 강자인 루슨트사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출액을 과다계상했다는 의심을 받으며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신용등급도 하향조정되는 등 기업부실 위기로까지 확산돼 고비 때마다 뉴욕증시의 반등의지를 꺾는 역할을 했다.
지난 5월에는 유럽 기업인 알카텔에 인수될 가능성이 부각되며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결국 무산되며 다시 내려앉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종목이다. 그 이후 기업절감 노력을 꾸준히 벌이고 분사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면서 부실 논의는 다시 수면밑으로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논의가 잠복하면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착실히 반등을 보이고 있던 루슨트사에 다시 먹구름이 몰리고 있다. 2·4분기 실적을 공개하면서 대규모 추가 감원계획을 함께 발표한 것이다. 2·4분기 실적은 당초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적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더해 추가로 1만5천명에서 2만명 수준의 감원을 단행한다고 밝힌 것이 화근이었다.
한때는 감원 발표가 기업 이익구조에 도움을 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도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미 대규모 감원을 추진하고 있는 루슨트사가 적자가 늘어나는 와중에 추가적으로 대규모 감원을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계속되는 사업부 매각 노력과 회생가능성에 주목하던 투자자들이 적자와 감원이 이어지는 상황에 손을 든 것이다.
발표와 동시에 주가는 맥없이 추락하면서 전체 뉴욕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실적 바로 전날 광통신 부분의 성공적인 매각을 발표했지만 실적 악화와 추가 감원의 악재를 희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느정도 예상됐던 루슨트의 움직임에 월가가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루슨트가 그동안 하반기 경기 회복론에 힘입어 잠복해 있던 미국 기술주들의 신용위기를 다시 불러일으킬 가능성 때문이다.
경기 회복에 예정대로 진행이 된다면 이러한 신용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사라질 수 있겠지만 반대로 지연되는 경기 회복은 부실자산 증가와 함께 신용위기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증권 뉴욕법인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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