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들의 침묵’의 여주인공 ‘스탈링’(조디 포스터)은 꽤나 고전적인 캐릭터다. 작고 연약하고 불안해 보이는 여성 수사관 후보생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의 가슴은 세상의 약자에 대한 따뜻한 측은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영화 속 그녀의 고군분투는 묘하게 눈물겹다.
▼엽기로 표출된 反사회성▼
반면 그런 그녀의 진면목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기특하게 여기는 ‘한니발’(안소니 홉킨스)이라는 캐릭터는 정말이지 압도적으로 엽기적이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은 그냥 씹어 먹어 버린다. 쿨!
얼마 전 개봉되었던 그 후속편 ‘한니발’에서 가장 엽기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산 인간의 두개골을 마치 뚜껑 따 듯이 따내어 그 속의 골을 감상하고는 그중 한 점을 노릇노릇한 버터를 녹인 후라이 팬에 살짝 지져 먹는 장면일 것이다.
이건 말하자면 한니발이 스탈링에게 그녀가 힘겹게 상대하고 있는 부패한 거짓말쟁이 권력자들의 머리 속을 구경시켜주는 거다. ‘자, 봐라. 얘네 들은 머리 속이 이래.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얘네들은 끄떡없어. 정당한 방법으로는 못 이긴다구. 왜, 그냥 보기만 해서는 모르겠어? 그럼 여기 한 점 직접 먹어 봐, 어떤지.’
이 영화의 원작인 토마스 해리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는 스탈링이 마침내 한니발에게 설복당한다.
그녀는 한니발에게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이런 못된 인간들 투성이의 세상 속에서 자신의 측은지심이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또 언제나 정의로운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고집스런 소신이 실은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얼마나 억압해 왔는지 깨닫게 된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그 못된 인간의 골을 한 점 지져 먹고는 한니발에게 자신의 억압되었던 욕구를 발산한다.
즉, 그녀는 그 괴물 한니발과 섹스를 한다. 그리고는 한니발을 따라 남미의 어느 도시로 잠적해 세상잡사와는 인연을 끊고 편안히 살아간다.
영화에서는 꽤나 의미심장한 원작의 이런 묘사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저 엽기적인 구경거리만을 보여주다가 엉뚱하게 그 다음 후속 편을 제작하기 편하도록, 속 보이는 결말을 짓고 만다.
물론 애초부터 이 소설의 각색이 그리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쪽 제작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의로운 주인공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엽기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비주류인 괴물 한니발을 따라 나선다는 결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또한 든다.
▼끝내 체념해버린 정의▼
그렇다고 원작자인 토마스 해리스가 뭐 그리 실망하거나 화를 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로 말하자면 할리우드 쪽 사람들의 머리 속 두뇌구조가 어떤지 익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저 엄청난 원작료와 인세에 파묻혀 세상잡사와는 인연을 끊고 편안히 삶을 즐기고 있을 것만 같다. 딱 한니발처럼.
임상수 namus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