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의 수가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하지만 상당한 수가 될 것이다. 나라를 움직이는 사실상의 힘은 주부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의미에서 주부가 행복하면 나라의 장래가 밝을 것이다. 주부가 편하면 남편이 편하고, 남편이 편하면 가정이 편하다. 가정이 편하면 나라가 편해진다. 그러니까 나라가 편해지는 방법은 주부를 편하게 하는 것이다. 주부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남편들이 ‘아내 여행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가족 단위 여행이 물론 좋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가족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일정은 맞추기가 힘들고 가정마다 다르다.
아내와 내가 원했기 때문에 가족 여행을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문제는 아이들 대학 입시 준비였다. 첫 딸이 천신만고 끝에 미대에 입학을 했다. 딸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는 집안이 초비상이었다. 첫 딸의 합격을 축하할 겸 가족 여행을 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아이의 입시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들도 대학에 합격했다. 이번에는 꼭 가족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더니, 막내의 입시가 남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막내도 대학에 입학했다. 2년 터울인 세 아이의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우리는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해 6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부부만의 여행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도 쉽지 않다. 남편과 아내의 일정이 맞지 않아 여행을 못하는 가정은 그래도 낫다. 가정 형편으로 보아 도저히 여행을 갈 수 없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나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부부 여행을 계획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결국 부부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나는 못 가더라도 집안의 핵인 아내는 여행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내 혼자 여행을 보낸다? 안 될 말이지. 여자 혼자서 어딜 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편 위주의 사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는 아내가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나는 “여행?” 하면서 놀랐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수만 가지의 생각을 했다. 여행을 가겠다는 아내의 말속에는 한 두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 혼자서요?” 라고 물었다.
“그래요. 나 혼자서요.”
“무슨 여행인데요?”
“한국 고적 답사 여행이에요.”
“얼마간의 여행인데요?”
“1박2일이에요.”
나는 길게 생각한 후 짧게 “좋소”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오랜 결혼생활을 해온 부부다. 여행을 갔다 돌아온 아내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보, 당신 정말 고마워요. 이제 사람이 된 것 같네요.”
남편이 아내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인간이 남의 입장에 선다는 뜻이다. 나라가 백성의 입장, 백성이 나라의 입장에 서야 나라가 잘 될 것인데, 그렇게 되려면 우선 남편이 아내의, 아내가 남편의 입장에 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정이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남자가 강자다. 강자가 약자의 입장에 서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
‘고맙다’ 그리고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은 의미가 깊다. 고적을 답사함으로써 내 나라의 모습을 더 자세히 알게 됐다는 것이 ‘고맙다’는 말의 이유 전체는 아니었다. 비록 ‘하루’지만, 남편이 ‘하루’를 아내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내는 그 ‘하루’의 안식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외화를 낭비하는 외국 관광은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나라의 장래를 밝게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도 훨씬 적은, ‘내 나라 먼저 구경하기 운동’의 임무를 아내가 맡아야 한다. 주부의 불만은 가정의 불만으로, 가정의 불만은 남편의 삶에 문제를 일으키고, 남편의 삶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사회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 된다. 모든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은 가정주부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일이다. 아내의 여행을 권장하는 남편의 아량은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밝은 사회를 위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강 숙(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