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결과를 설명중인 한상진 한국측 협상 대표
한국과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상호대여(맞교환)’ 형식으로 교환하기로 재차 합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23∼25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측과 제4차 반환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측 협상대표인 한상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서울대 교수)은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 "작년 상황과 달라진 것 없어"
합의의 골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외규장각 도서 중 어람용 의궤와 우리의 비어람용 복본(複本) 의궤를 상호 대여하기로 양국 협상대표가 합의하고 이를 자국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9월부터 한국의 전문가들이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의궤의 보존상태 내용 등을 직접 실사한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합의는 지난해 10월 양국의 합의와 달라진 것이 없는데다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반발하고 나서 합의 이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규장각의 정옥자 관장은 “규장각의 의궤를 절대로 내줄 수 없다”면서 “상호대여를 전제로 한 외규장각 실사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 규장각 연구원들은 정부가 상호대여키로 최종 결정할 경우, 집단행동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국내 학계의 이같은 반발을 의식한 듯, 합의 이행 시기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외규장각 도서 실사 성과를 보고 여론를 청취해가면서 정부가 신축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면서 “현재로선 상호 대여로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 한상진대표 "확정 안됐다"
한 대표는 또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반환 요구를 고수하거나 협상 결렬 선언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위임한 권한의 한계(상호대여를 뜻함) 안에서 일해야 하는 협상 대표로서는 상호대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佛약탈 합법화 해주는 꼴"
이러한 한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상호대여 방식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치욕이다. 유괴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아이를 내주는 꼴이다.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셈일 뿐아니라 다른 해외유출 문화재 환수에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오기 위해 의궤를 영구 대여하는 것은 ‘문화재의 해외 반출은 4년을 넘길 수 없다’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어설픈 협상보다는 차라리 협상을 결렬시키거나, 당분간 시간을 갖고 추후 협상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게 좋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