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인 액상프로방스. 광장의 노천카페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두런두런 일어서는가 싶더니, 이윽고 광장에 면한 대공연장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액상프로방스 음악축제의 26일 순서인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가 막을 올리는 신호였다. 공연은 남프랑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가신 밤 10시나 되어 시작됐다.
안내원에게 자리를 안내받아 극장에 들여어서는 순간, 휙 하고 한줄기 바람이 뺨을 스쳤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반짝였다. 1300여석의 공연장은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었던 것이다. 옛날 광장의 일부였던 공간을 막고 한쪽 벽에 무대를 설치하니, 세 방향의 벽은 그대로 창문과 테라스가 달린 보통의 건물 외벽이었다.
들을만한 소리가 날까. 염려는 관현악이 서곡을 연주하는 순간 달아나 버렸다. 건물의 외벽에 감싸인 옛 광장 공간은 명료하고 아늑한 음향을 전달해주었다.
이 날을 시작으로 네차례 공연된 올해 ‘마술피리’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슈테판 브라운슈바이크 감독의 파격적인 연출에 쏠렸다. 그는 막이 오르자마자 풍성한 아이디어로 관객의 시선을 붙들었다.
‘마술피리’에서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1막에 등장하는 큰 뱀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관심거리. 그러나 이날 막이 열리자 관객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뒹구는 타미노 왕자의 모습이었다. 극중의 사건을 ‘꿈’으로 처리해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한 장치였다.
이번 공연의 ‘예정된 스타’는 28, 29일 밤의 여왕 역으로 출연하는 프랑스의 스타급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기자의 일정상 그가 출연하는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움은 차라스트로 역으로 출연한 젊은 베이스 드니 세도프가 메꾸어주었다. 깊고 묵직하며 강렬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멋진 용모와 큰 키가 더해져 특히 여성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보다 하루 앞선 25일, 액상프로방스에서 북서쪽으로 한시간 반 거리인 작은 도시 오랑쥬. 2세기에 건립된 거대한 로마시대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막이 올랐다. 1만여명을 수용하는 이 극장은 로마 극장유적 중에서도 드물게 거의 완벽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같은 야외공간이지만 훨씬 큰 규모인 만큼 역시 음향에 대한 걱정이 든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관현악의 서곡이 시작되자 극장은 놀랄만큼 명료한 소리로 채워졌다. 비밀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무대 뒤편의 거대한 벽. 높이 38미터에 가로 103미터인 이 돌벽이 가수들의 노래를 효과적으로 반사시켜 객석 어디서나 풍요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자객 스파라푸칠레 역의 파타 부르쿨라제 외에 눈에 띄는 출연자는 없었지만 리골레토 역의 카를로 구엘피를 비롯, 출연자 전원이 깔끔하고 숙련된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었다.
프로방스 지역의 대표적 음악축제인 액상프로방스 축제는 매년 7월 6∼30일경, 오랑쥬 야외 음악 축제는 7월 4∼30일경에 개최된다. 올해도 각각 정명훈, 예프게니 키신 등 1류급 출연자들이 화려한 경연을 펼쳐 정규시즌이 그친 한여름의 ‘음악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인근 몽펠리에에서도 국제적인 음악축제가 펼쳐진다. 올해는 26일 배우 제라르 드파르듀 사회로 열린 미녀 자매 피아니스트 라베크 자매의 듀오 공연이 일찌감치 화제로 떠올랐다.
2002년 공연일정 관련 사이트
www.festival-aix.com (액상프로방스)
www.choregies.asso.fr (오랑쥬)
www.radio-france.fr/chaines/orchestras/festival-montpellier (몽펠리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