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가 그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0일 끝난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된데 이어 8월4일 개봉되는 영화 ‘소름’에서 주인공 용현역을 맡은 김명민(30).
그는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면서도 그 몸부림이 애처로웠던 젊은이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MBC 드라마 ‘뜨거운 것이 좋아’의 최진상역이 그에게 남겨준 흔적이다. 여기에 4회가 방영된 SBS 주말드라마 ‘아버지와 아들’의 반항적인 재두의 얼굴이 겹쳐진다.
하지만 ‘소름’의 용현을 만나면 진상도, 재두도 그에게서 사라진다.
영화는 두차례 화재로 사람이 죽은 낡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을 다뤘다. 이 아파트 510호에 사는 멍투성이의 선영(장진영)과 504호에 새로 입주한 택시 기사 용현을 중심으로 미스터리가 벌어진다.
그는 영화 데뷔작인 ‘소름’의 개봉을 앞두고 소름이 돋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떨고 있을지 모른다.
“5월 제작진을 중심으로 한 기술 시사회에서는 고생하면서 찍은 화면이 많이 사라져 아쉬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최근 공개 시사회에서는 참석자의 얼굴을 살피느라 어떻게 영화가 끝났는지도 몰랐습니다. 영화 어땠어요?”
연기가 ‘업’인 배우가 도리어 묻는 일이 주업인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적어도 ‘소름’에서 김명민은 다정다감하다가도 자극을 받으면 이빨을 드러내는 맹수같은 내면을 분출시켰다.
영화 촬영이 있었던 지난 겨울 그는 고통스러웠다. 11월부터 3월까지 거의 매일 살수차가 뿌려대는 ‘인공 비’를 맞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한 겨울 살수차에서 날아오는 비는 꼭 물 대포를 맞는 것처럼 아파요. 또 금세 물이 고드름이 되고 그걸 다시 녹여가면서 찍었습니다. 제가 눈을 부릅뜬 채 비를 맞는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그건 이틀이나 눈을 그렇게 뜨고 찍었습니다.”
그는 담배를 못피웠지만 ‘소름’ ‘아버지와 아들’에서 분위기에 어울리는 화면을 위해 손에 대기 시작했다. 촬영을 시작할 무렵 갑자기 담배을 태우면 핑 돌기 때문에 하루 5개비씩 입에 물고 ‘훈련 아닌 훈련’을 하고 있는 셈.
그는 서울예대 재학시절 발음 교정을 위해 볼펜을 입에 물고 신문을 읽었다. 96년 SBS 공채 6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지난해 ‘뜨거운 것…’ 이전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의 무명시절을 지탱한 것은 이런 독한 근성이었다.
영화배우 박신양 김승우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의 마스크에는 강점이 있다. ‘뜨거운 것…’과 ‘소름’의 다른 이미지처럼 그리기에 따라 다른 색깔이 나온다. 화면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있다.
“황폐한 분위기의 ‘소름’을 찍다보니 제 스스로도 좀 지쳤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따뜻하고 매력적인 러브 스토리를 연기하고 싶습니다.”
6월 결혼한 그는 “결혼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인기를 얻고 싶지는 않다”면서 “연기로 정면승부를 하면 팬들이 정당하게 평가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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