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취재차 한국에 출장온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한 기자에게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의 교과서가 10%대의 채택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 기자는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잘 싸우면 1%내로 묶을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10%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시는 일본 우익의 입김이 우려할 정도였는데 의외의 답을 듣고서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7월 26일자 동아일보에서 ‘모임’측의 역사교과서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간 의견광고를 보고 일본의 시민단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국내 시민단체가 구호와 상징만 난무하고 풀뿌리는 취약한 데 비해 일본의 시민단체는 그야말로 ‘개미처럼’ 일하고 있었다.
지난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이라는 일본 시민단체의 사무국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일본교과서 개악 움직임에 대해 설명하고, 이 사실을 일본 전국에 알리기 위해 강연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지만 올해도 아니고 내년에 있을 일이기에 그다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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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오늘, 우리는 전국에서 일장기를 불태우고 규탄 구호로 가득한 집회를 갖고 있을 때 일본의 시민단체는 교과서 채택 권한을 가진 교육위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을 압박해 들어가는 조직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공립학교 중 단 한 곳만 왜곡 교과서를 채택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가 전국을 누비며 차근차근 문제의 본질을 이해시키고, 자료를 배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조직하는 데 비해 국내 시민단체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감정적 대결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이 아사히신문에 전면광고를 게재한 경위를 알아본 뒤 다시 한번 놀랐다. 3개 단체가 움직여서 단 2주만에 2000여명으로부터 600만엔 가량을 모금해 550만엔짜리 전면광고를 실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도 참여하겠다는 단체들의 요청이 많아 다른 신문에도 광고를 게재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부럽기까지 했다.
국내 시민단체들도 일본신문에 광고를 내기 위해 모금운동(홈페이지 http://www.japantext.net)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1회 광고에 1억원 이상 필요한 데 비해 아직 수백만원밖에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한 번 광고로 무엇이 나아질까 하는 반론도 적지 않지만, 이번 모금운동은 국내 시민단체의 부족한 역량과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간의 교류가 단절돼 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교류 단절이 교과서 채택에 있어서는 충격적인 효과를 가져왔지만, 청소년들의 민간교류마저 중단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정과 올바른 기술이라는 점에서 시민운동을 차분하게 재검토해야 할 것 같다.
김은식(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