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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민단체 32인 성명' 박형규 목사 인터뷰

입력 | 2001-08-05 18:38:00


2일 발표된 사회 원로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의 ‘32인 공동성명’은 언론은 언론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극도의 분열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겪고 있는 혼란을 치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종교계 원로로 존경받고 있는 박형규(朴炯圭·78) 목사를 만나 이 성명에 참여한 경위와 최근 상황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모두들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막고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바쁩니다. 중립지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성명서에도 나와 있듯이 누구나 어느 한편에 서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1948년 부산대 학생회장을 하면서 좌우익으로부터 모두 테러를 당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처럼 폭력이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국론 분열의 심각성은 그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우경이든 좌경이든, 친여든 친야든 다양한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됩니다. 특히 통일을 과제로 안고 있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어느 한편을 무조건 매도하고, 어느 한편을 무조건 옳다고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던 인권운동가로, 소위 말하는 ‘보수언론’에 비판적일 것 같은 목사님이 성명에 참여한 것은 의외입니다.

“저를 좌경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 자신은 늘 중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60, 70년대 월간 ‘기독교 사상’ 주간, ‘기독교방송(CBS) 상무’를 지내면서 유신정권의 언론 탄압을 받아본 일이 있어 언론이 권력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압니다. 일제 말기와 유신정권, 5공 정권 하에서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독재권력 아래서 언론은 본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도 양심 있는 언론은 간신히 살아남아 있다가 기회를 봐서, 그 틈새 사이로 한번씩 국민에게 바른 소식을 알렸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이 권력의 힘을 이겨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를 다 들춰내서 책임을 묻는다면 법망에 걸리지 않을 기업이나 사람이 있을까요. 여당 자체도 권력으로 덮여 있어서 그렇지, 파헤쳐 보면 잘못이 없겠습니까. 완전히 뒤집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혁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아니 혁명을 하더라도 안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권력을 쥐고 나서 온갖 비리를 다 캤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결국 자기편으로 만들어 덮어버렸지요.”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정권과 언론이 각자 해야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언론이나 정권이나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야 합니다.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것이 언론이니만큼 언론은 다른 부분의 개혁에 앞서 먼저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언론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추슬러 공격받을 수 있는 빌미를 제거해야 합니다. 평소 언론사의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고 기자가 도덕적이지 못하면 언제든 정권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지요. 정권도 이제는 휴전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세무조사 발표로 특정 언론사들이 도덕적 타격을 받은 것이 정권에 얼마나 유리한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발표 때 웅성웅성하던 민심이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고 봅니다. 나중 재판에서 정부가 이길지 의심이 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언론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긍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정권 쪽이 우선 큰 결단을 내려줬으면 합니다.”

박 목사는 73년 유신체제에 항거한 첫 집단운동인 부활절 남산야외음악당 연합예배 시위 사건,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92년 서울 제일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줄곧 가시밭길을 걸어온 종교인. 81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과 8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장을 역임했으며 82∼91년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 노동인권회관 이사장, 제2건국위 제2기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