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 葬(화장)
葬-장사 장 墓-무덤 묘 屍-주검 시
髮-터럭 발 膚-살¤ 부 闢-열 벽
새로운 葬墓文化(장묘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전통적인 방식, 그러니까 屍身(시신)을 埋葬(매장)하고 封墳(봉분)을 쓰는 방식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첫째,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어렵게 한다. 매년 서울 여의도 크기만한 땅이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땅덩어리인데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분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아가는 지금, 火葬을 하여 납골당에 모셔두면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많다. 요즘은 산림이 무척 우거져 산소를 찾기도 여간 성가시지 않다. 매년 해야 하는 성묘의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火葬의 長點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實踐(실천)은 별개의 문제다. 술 담배 딱 끊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 쯤이야 다 알지만 쉬이 못 끊는다.
孔子로 대표되는 유가의 여러 사상 중에 ‘몸뚱아리’ 중시관념이 있다. 한마디로 제 몸 하나는 무척 중시한다. 이 같은 관념을 총집대성한 것이 孝經(효경)의 다음 구절이다.
‘身體髮膚(신체발부), 受諸父母(수제부모), 不敢毁傷(불감훼상), 孝之始也(효지시야).’
한마디로 ‘우리 몸뚱아리 어느 하나 부모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으니 털끝 하나라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孝의 첫걸음’이라는 내용이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 甲午更張(갑오경장) 때 開化의 바람이 몰아쳤다. 朝廷(조정)은 고이 틀어올렸던 상투를 싹둑 자르고 대신 서양식 헤어스타일로 바꿀 것을 결정했다. 斷髮令(단발령)이다.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 高宗(고종)이 친히 상투를 잘라버렸다. 전국이 벌집 쑤신 듯 들끓기 시작했다. ‘頭可斷 髮不斷’(두가단 발부단·목을 잘라도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 이 때 죽음을 선택한 선비들이 많았다. 경북 안동의 한 선비는 개화물을 먹은 아들이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자 충격을 받아 자살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이렇게 손톱도 함부로 자르지 않는 것을 孝의 첫걸음으로 알았던 시대였으니 性器(성기)를 잘린 내시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중국의 경우, 잘린 玉根은 항아리에 오동나무 기름을 채워 평생 신주 모시듯 보관하다 죽으면 원 위치에 고이 붙여준다. 이른바 全屍觀念(전시관념·시체를 온전하게 해 줌)이다.
이 정도였으니 시체를 불에 태우는 火葬은 天地開闢(천지개벽)을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렷다. 참고로 火葬은 佛敎儀式임을 밝힌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