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8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북한 선수단 가운데 상당수가 탄광 정치범수용소 등으로 추방돼 고난에 찬 여생을 보냈다고 산케이신문이 4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북한 선수단 가운데 신용규 주장, 박두익 선수 등은 귀국 후 체육인으로서는 최고 영예인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는 등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김일성 주석이 정적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갑산파 숙청 사건’에 휘말려 월드컵대회에 간여했던 박금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숙청되면서 선수단에도 화가 미쳐 상당수가 탄광과 농촌 등으로 추방됐다는 것.
특히 과거 부친이 대지주였던 신용규 주장은 함북 경성의 한 공장으로 추방됐다.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었던 박승진은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건너온 사람이 일본에 보내는 편지를 70년대 외국 경기 때 전달했다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