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가 전국구 국회의원 선출 방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2004년 4월15일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니까 충분한 논의와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려면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차제에 선진적인 선거를 지향하는 내용들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고,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방안이 그 중 하나다.
1995년 베이징 여성회의에서 채택된 행동강령은 여성의 대표성에 대한 선거제도의 검토와 이에 따른 개정을 각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여성할당제와 목표제, 여성 리더십 향상훈련 프로그램, 그리고 가정과 직장을 조화시킬 수 있는 조치 등을 도입한 국가들이 늘어났다. 2000년 유엔 여성특별총회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알바니아는 선거인명부에 성평등을 보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했고 캐나다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1995년과 1997년 사이에 50%로 늘었다. 가나는 정책 결정직에 여성 40%를 배정하는 적극적 조치안을 채택했고, 이탈리아는 선거법에 적극적 조치를 포함하는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핀란드는 정부 조직에 한 성이 40% 이상 되도록 하는 할당제를 제안했다.
2000년 유엔 여성특별총회에서 단연 관심을 끈 것은 프랑스의 사례였다. 프랑스는 2000년 5월 의회에서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개헌안이 통과됨에 따라 ‘남녀 동수 공천’을 골자로 한 ‘남녀정치평등법안’이 제정됐다. 그리고 2001년 3월 이 법에 따라 첫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당초 전문가들은 남녀 동수 공천제로 여성 시의원 비율이 40% 정도로 늘 것으로 전망했으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주민 1만5000명 이상의 시의회에서 여성 비율이 22%에서 47.5%로 급증했고 여성시장은 33명에서 44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이런 여성 후보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남녀 정치평등은 아직 멀다고 언론들은 지적했다. 르몽드지는 논평을 통해 이 제도가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의 여부는 얼마나 많은 여성 당선자들이 부시장이나 재정과 지역발전 분야의 요직에 임명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고, 여성계에서도 요직 임명에까지 남녀평등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당법에 비례대표 후보의 30%를 여성으로 한다는 여성할당제가 있으나 의무조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어서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16대 여성의원의 수가 15대에 비해 2배 가량 늘었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확대돼야 한다. 양성(兩性)이 성별 균형을 이뤄 함께 입법활동에 참여해 법과 제도, 평등한 자원배분과 정책구조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성 평등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남성 정치인에게는 성 평등의식 프로그램을, 여성 정치인에게는 지도력 향상 프로그램을 상호 보완해 실시하고, 여성할당제나 목표제 도입과 이에 따른 정당 지원금의 차등 배분 등을 포함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방안이 적극 강구되길 기대한다.
남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