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젠 힘들어요….”
4일 열린 200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마라톤에서 풀코스 도전 26번 만에 처음으로 중도에 포기한 ‘봉달이’ 이봉주(31·삼성전자)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국민의 엄청난 기대에 대한 부담감, 소속팀의 무리한 출전강요, 선수의 컨디션 체크에 실패한 코칭스태프 등이 바로 그 원인.
이봉주는 6월 강원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에서 전지훈련하다 오른쪽발 뼈마디에 염증이 생겨 제대로 훈련을 못해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했다. 부상에서 회복돼 7월 6일부터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실시된 전지훈련에서도 훈련은 소화했지만 컨디션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레이스를 포기하고 만난 이봉주는 “국민에게 죄송합니다. 갈수록 힘들어 지네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받았다는 것.
문제는 삼성전자마라톤팀에도 있다. 삼성전자는 이봉주가 지난해 10월 시드니올림픽에서 부진하자 2개월 뒤 후쿠오카마라톤에 출전시켜 2위에 입상하는 등 ‘재미’를 보았다. 또 올 4월엔 이봉주가 보스턴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쓰자 다시 3개월여 만에 세계선수권 출전을 강행했다. 일반적으로 세계 유명 마라톤선수는 1년에 많아야 두 번 정도 풀코스를 뛰는 게 보통.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봉주로 하여금 10개월 새 무려 네 번이나 풀코스를 뛰게 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날 기자들이 이봉주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팀 한 관계자가 불쑥 나서며 “회사에서 결정해 알려주겠다”고 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선수’보다는 ‘회사’가 우선이라는 것.
성적에만 급급한 코칭스태프도 책임이 있다. 오인환 코치는 이날 “훈련은 좀 덜했어도 봉주 정도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오 코치는 이봉주가 현지적응훈련 중 가끔씩 허벅지 경련이 일어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래저래 ‘봉달이’가 너무 ‘혹사’ 당하고 있다.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