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년 전 이맘때, 투자신탁회사들이 대우 회사채의 부실을 회사 재산으로 메워오다 끝내 두 손을 들고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펀드의 자산 가치는 줄어드는데 회사 돈을 퍼서 고객에게는 원본을 보장해줬던 관행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당시 금융감독당국은 실적배당상품에 ‘원본보장’을 약속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 후 2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투자원금을 돌려주는 게 투자자에게는 달콤하겠지만 운용사의 부실과 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국민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뼈저린 경험을 했다.
그래서일까. 한국기술투자가 3일 이사회를 열어 ‘구조조정펀드(1호 기업구조조정조합)의 원본을 보전해주고 더 나아가 회사 자산을 넣어 수익률을 높여주기로’ 결정한 점이 영 개운치가 않다. “투신과 달리 우리는 겨우 137억원의 자산을 펀드에 바꿔 넣는 것”이라는 해명이 더욱 놀랍다.
투신의 부실도 ‘이것쯤이야’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구조조정펀드의 투자자도 원금보전을 요구할 것은 뻔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구조조정전문회사의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정부가 벤처지원과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구조조정펀드를 만들면서 근거법인 산업발전법에서 ‘펀드’의 기본원칙마저 무시했다는 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국기술투자와 같은 사례는 감독 대상이지만 근거법에 관련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뒤늦게 원본보전 금지조항을 넣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서두르다 보니 관련법이 상당히 거칠어진 것 같다”고 얼버무린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구조조정기업 및 벤처기업과 정치권의 유착설 등 의혹을 털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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