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철인’ 박영석(38·동국대산악회 OB)이 다시 ‘속세’인 서울에 내려왔다.
그는 1년에 절반 이상을 히말라야 눈덮힌 고산에서 산다.그러다 잊을만하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그동안 잘 있었어요?”라며 빙그레 웃는다. 그때 그의 얼굴은 어김없이 새까맣다. 왜냐하면 8000m가 넘는 눈덮인 히말라야 봉우리 하나를 오르고 난 뒤이기 때문.
그런 박영석이 금년엔 히말라야에 갈 일이 없단다. 그것은 그가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히말라야 8000m 이상 자이언트 14봉 완등에 성공했기 때문.
지난달 22일 박영석은 13시간동안의 사투 끝에 K2봉(해발 8611m) 정상에 올라 모든 산악인들의 꿈인 14봉 완등을 마쳤다. 93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뒤 꼬박 8년2개월동안 쉬지않고 도전한 끝에 일궈낸 쾌거다.
5일 오후 박대장을 만났다. 89년 당시 사상 최연소인 26세에 등반대장이 된 박영석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대장’으로 부른다. 하루전인 4일 귀국하는 그를 인천공항에서 만났지만 이번 등반에서 아깝게 목숨을 잃은 박영도 대원의 빈소로 달려가는 그의 팔을 잡아끌수는 없었다.
빙긋이 웃으면서 나타난 그는 다짜고짜 “담배있냐”고 물어본다. “어젯밤 빈소에서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이 없다”는 말과 함께….
세계 최고봉을 산소통없이 오르는가 하면 눈사태로 700m를 떠내려가며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뒤에 7000m까지 올라가는 엄청난 체력으로 ‘히말라야의 철인’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여러모로 일반상식을 깬다.
박대장은 5300m 고지의 베이스캠프에서도 소주를 즐기고 심지어 산소가 평지의 40%도 채 안되는 7000m에서도 담배를 입에 문다.
“피고 싶을 때 한두대 피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다”는 게 그의 지론. “상황이 안좋아 막막할 때 담배 한 대 피면 안보이던 루트도 보인다”든가.
외모도 그렇다. 1m75에 75㎏의 그리 크지않은 체격에 동그란 얼굴은 한때 어린아이들에게 인기있는 만화주인공 ‘호빵맨’을 연상시킨다. 영 ‘독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14좌 완등한 순간 기분이 어땠어요?”
“처음엔 담담하더라고요, 그동안 나와 함께 등반하면서 목숨을 잃은 6명 위패(K2 등정 다음날 박영도 대원이 사망, 그와 함께 등정하다 숨진 사람은 7명이 됐다)를 가지고 올라갔어요, 그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무거워져요.”
그가 껄끄러워할 질문을 어렵게 꺼내봤다. 지난해 먼저 14좌 완등에 성공한 엄홍길(41)과의 관계. 안타깝게도 엄씨의 기록은 아직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4좌 중의 하나인 시샤팡마 주봉 등정에 시비가 일었기 때문.
히말라야 고산 등반자들의 정보창구 역할을 하는 세계적 권위의 전문사이트 ‘에베레스트뉴스’(www.everestnews.com)엔 박영석이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완등한 것으로, 엄홍길은 아직 1개가 남아있는 것으로 돼있다.
“증거가 없어 인정못받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안타깝죠. (엄)홍길이형하고 나하고 누가 먼저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고산등반은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가 아니에요. 사람 죽여가면서하는 스포츠가 어디있어요?”
약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박대장이 먼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 그렇게 얘기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물어봤다.
(잠시 째려보더니) “아니 글쎄, 누가 먼저가 중요한게 아니라니까요. 중요한 건 아직 미국, 일본도 못해낸 엄청난 일을 조그만 나라인 한국이 두명이나 해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까지 6개 국가밖에 안돼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산을 타게된 계기를 물었다. 대답은 “나보다 더 잘 알면서 왜 물어봐요.”
동네 야산이나 아버지를 따라 올라봤던 그가 산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때는 80년. 사격선수를 하던 오산고 2학년생 박영석은 그해 광화문에서 마나슬루 등정에 성공한 동국대산악부의 카퍼레이드를 보고 ‘아하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동안 덮어두었던 책을 펴보기 시작, 재수생활을 거쳐 동국대 체육교육학과에 들어갔다. 기강이 세기로 유명한 산악부에서 선배들의 기합도 즐거웠다는게 그의 추억이다.
‘사나이’ 박영석은 커서 울어본 적이 있을까?
“딱 세 번이네요. 93년 에베레스트 8300m 절벽에서 미끄러져 120여m를 추락하다가 간신히 안전벨트가 작동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죠, 그냥 서럽더라구요. 커서 처음으로 엉엉 울었죠. 두번째는 95년 다울라기리 1봉 등반 땐데 크레바스에 빠져 한 20m 떨어지는데 배낭이 틈에 걸려 거꾸로 매달려있었어요. 그때가 둘째아이 백일이 조금 지났을 땐데 ‘얜 아빠얼굴도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죠. 세 번째는 이번 K2에서 그냥 울었죠.”
박대장에겐 아들 둘이 있다. 큰아들 성우(11)는 브로드피크 원정 때도 아빠를 따라가 꼬마대장 노릇을 톡톡히 해내 ‘핏줄을 속이지 못한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박대장은 “애들은 돈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말한다. 동갑내기 아내 홍경희씨와 두 아들은 올 2월 뉴질랜드로 갔다. 친척들이 모두 그곳에 있는데다가 애들 교육문제도 작용했다.
7000m이상 고산등반을 하면 생식기능에도 영향을 준다는데 그는 어떨까. “문제있지요,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진이 다 빠져서 아무일도 못해요. 외국등반대 의사들이 그러는데 한번 등반한 뒤 두달정도는 금욕하라고 하더군요, 혹시 기형아출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튼튼한 아들 둘이나 뒀으니 행운”이라고 말하자 씨∼익 웃는다.
애들 볼 시간이 별로 없는 그는 어떻게 부자지간의 정을 나눌까? “목욕이죠, 애들도 좋죠 뭐 엄마처럼 비누칠해라 때밀어라 잔소리 없고, 우리 삼부자가 냉탕에서 막 물장구치면 주위 시선이 따갑긴 하지만 신나죠.”
두달이 넘은 이번 원정에서도 큰 아들 성우가 ‘아빠 빨리와서 같이 목욕해요’라고 이메일을 보냈단다.
히말라야를 섭렵한 박대장의 다음 관심사는 세계 3극점(에베레스트, 남극점, 북극점) 도달과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2003년까지 달성하는게 목표다. 올 11월경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와 남극 빈스매시프 등정길에 나설 계획.
“그럼 이 목표를 달성한 뒤엔 또 어디로 가죠?”
나의 물음에 그는 “글쎄요....어디론가 또 가야죠.”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