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여자 때문에 마음이 통째로 흔들렸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 여자 생각뿐, 눈도 멀었다. 뵈는 게 없으니 겁도 없어졌다. 여자가 싫다는데도 전화하고 꽃도 보내고 선물도 보냈다. 자기 차로 출퇴근시켜 주겠다며 아침엔 집 앞에서, 저녁엔 회사 앞에서 여자를 기다렸다. 지겨워진 여자가 가족들한테 말했고, 어느날 그는 여자의 오빠와 그 친구들로부터 거의 몰매를 맞을 뻔했다.
그는 자기가 겪은 일련의 과정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여자가 자기를 싫다고 하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만큼 조건이 완벽한 남자도 드물었다. 인물 학벌 능력 재력 배경 기타 등등.
이제껏 자기가 눈길을 안줘서 그렇지 좋다고 매달리는 여자가 한둘이었던가. 그런 날 거절해? 그리고 열 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는 소리 아직 못들어봤다. 어디 두고 보자. 오기가 뻗친 그는 결국 스토커로 몰려 경찰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그럼요. 되고 말고요.”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개의 사랑은 기습처럼 시작돼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마음이 일치할 때보다 일치하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더 많다. 난 상대방에게 뜨거운 열정을 느끼는데, 그는 겨우 날 친구로 생각한단다. 이건 좀 낫다. 앞의 케이스처럼 난 상대방이 좋아 죽겠는데 그는 내가 싫고 지겹다고 하면 문제가 좀더 복잡해진다. 우선 거절당하는 쪽에선 자존심의 상처 때문에 거절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대망상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을 감히 거절해?’ 하는 심리도 여기서 파생한다. 사랑의 감정이란 객관적인 조건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그보다는 서로의 무의식적인 욕구가 훨씬 더 큰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등의 설명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게다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배려하지 못하는 인격장애자라면 스토커로 발전하는 건 시간문제가 되고 만다. 특히 자기애적 인격이나 히스테리 인격의 소유자들은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사랑도 내가 좋으면 상대방도 당연히 날 좋아해야 한다고 여겨, 여러 가지 문제들을 초래하는 것이다.
사랑을 할 때도 그렇고,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을 때만큼 인격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순간도 없는 셈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