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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의 미국 바로보기]갈수록 복잡해지는 인종지도

입력 | 2001-08-07 18:29:00


글로벌시대를 맞아 흔히 거론되는 것이 ‘세계의 미국화’이다. 이는 패권주의를 동반한 미국의 ‘세계경영’을 지칭한다. 그러나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이 ‘미국의 세계화’이다. 미국 영토 안에는 세계 만국(世界 萬國)이 마치 전시장의 작은 모형들처럼 들어서 있다. 미국 사람들이 나가 있지 않은 나라가 지구상에 별로 없듯이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머무르고 있는 시애틀만 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한국적으로’ 살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한글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PC방이나 노래방은 일종의 ‘한인 해방구’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 쿠바 사람, 혹은 레바논 사람의 경우도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세계화’ 현상은 ‘세계의 미국화’ 추세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의 급증이 하나의 증거인데 몇 주 전에 나온 공식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 동안 불법 이민자는 500만명에서 700만명 정도로 늘어났다. 한국인 3만여명을 포함해서 말이다.

사실상 미국을 방문할 때마나 이 나라는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세계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는 ‘합중국(合衆國)’이라는 다소 특이한 국호(國號) 탓만이 아니다. 대신 바깥 세계로부터의 이주 및 이민 행렬이 15세기 이후 현재 모습의 미국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합중국을 수식하는 ‘아메리카’의 어원은 우리가 간여할 바가 아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이탈리아의 해양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면 어떻고 최근 시애틀 출신의 한 전기작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영국의 무역상 리처드 아메리크면 어떤가. 분명한 점은 아메리카라는 간판 밑에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사이좋게 융합돼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깝다. 이른 바 ‘차별과 격리’는 다인종 다민족 사회의 핵심 요소로 기능해온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갈등은 주로 다수의 백인과 소수의 흑인 사이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근자에 들어 미국 사회의 인종 지형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최근 20년 동안 미국 역사상 동일한 기간으로는 최고 수치의 이민자 유입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이 아시아와 남미 출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신규 이민집단의 사회적 위상이다. 흑인과 함께 분명히 그들도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거에 해당하지만 막상 그들의 이민사는 100여년 전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계 백인들의 행적에 보다 가깝다. 곧 양자 사이에는 정착 패턴의 유사성이 존재하는 데 ‘리틀 이탈리아’나 ‘코리안 타운’ 등 과도적인 ‘자치구’에 자발적으로 모여 살면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한 다음 두어 세대에 걸쳐 신분 및 계급 상승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체로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흑인집단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문제는 미국이 보다 확대된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나아가면서 ‘차별과 격리’ 양식이 과거에 비해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부쩍 늘어난 한흑(韓黑)갈등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향후 미국 사회에는 소수 종족 상호간의 대립이 점차 심화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라 백인 주류사회가 어떤 소수민족 집단과 정치적으로 연계하는가 하는 점도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난 달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미국 내에 살고 있는 100만명 이상의 멕시코계 불법 체류자들을 법률적으로 일괄 구제하는 법안을 제출한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혹시 부시 대통령 자신이 멕시코와 접경한 텍사스주 출신으로서 그들을 차기 대선에서 유권자로 확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인종 다민족 사회의 구축은 소수 종족 사이의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류 백인사회의 전략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흑백’ 필름으로는 미국 사회의 진면목을 더 이상 제대로 담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현 미국 위싱턴대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