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제각각 특이하고 독특한 요리들도 많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비슷비슷한 요리도 많은 것에 의외로 놀라게 됩니다. 어차피 사람 먹는 거야 거기서 거기이니 이래저래 해먹다가 맛있다고 느껴지면 요리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각 나라마다 이름은 달라도 결국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요리들이 많지요.
고기를 구워 먹는 방법도 나라마다 다 달라서 소스를 발라 바베큐를 하거나 등심 안심에 각종 시즐링을 해서 구워 우아하게 칼로 썰어먹는 스테이크 같은 요리는 서양아이들이 즐겨 먹는 요리이죠. 하지만 빨간 살에 꽃눈을 흩뿌린 듯한 꽃등심이나 얄팍하게 구우면 꼬들꼬들한 맛이 일품인 차돌백이나 육질이 길길이 느껴지는 치마살 등등 고기 부위로만 불려지는 요리-'생고기 구이'는 우리나라의 대표 선수가 아니겠습니까. 특별한 조리가 없이 생고기를 얇게 저며 썰어 넓적한 불판에 소금만 뿌려 구워서는 참기름장, 쌈장에 찍어먹는 그 구이 요리를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긴 힘들 것이라고 확신했죠. 그런데 가까운 아시아 나라도 아닌 멀리 프랑스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생고기 구이 요리를 만나게 될 줄이야...
프랑스의 샤모니는 알프스 자락을 이태리,스위스와 나누고 있는 도시입니다. 고개를 들면 멀리 눈덮인 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길가에 늘어선 올망졸망한 뾰족지붕 아래에 가지가지 꽃들로 단장한 창문이 활짝 열린 동화속의 마을 같은 모습이죠.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와 등산열차도 탈 수 있답니다.
알프스 가까이 왔으니 알프스의 유명요리인 '퐁듀'나 먹어볼까 하고 저희는 오늘도 꿈틀꿈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사뭇 다른 이국적 풍경들에 눈이 팔려 '야~예쁘다.'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두리번 거리던 즈음, 길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어디서 많이 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억! 저것은 바로 생고기구이가 아닌가! 가운데는 불판,옆에는 저며 놓은 생고기, 직접 올려 굽고 있는 저 지글거리는 고기에선 꿈에 그리던 낯익은 향기가 온 마을에 퍼지고...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지 우아하게 퐁듀를 먹겠다던 애초의 계획은 까맣게 잊고 덜렁 거기로 들어가 그 요리를 시키고 말았답니다.
우리나라의 생고기 구이를 연상케 하는 문제의 요리 이름은 삐에라드 오 뵈프(Pierrade au boeuf)라고 하는 것인데 쉽게 말해 '쇠고기 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서는 '퐁듀'만큼이나 잘 팔리는 유명한 요리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나오는 모양새가 우리나라 생고기보다는 훨씬 앙증맞은게 꼭 일본음식 같아서 뜨겁게 달궈진 작은 돌판을 하나주고 생고기를 한접시 줍니다. 그럼 그냥 이걸 돌판에 한점씩 올려서 구워먹으면 되죠. 여기까진 우리나라의 등심 구이와 거의 비슷하죠? 조금 특이한 것은 역시 찍어먹는 장. 참기름장이나 쌈장은 물론 아니고 서양 요리에 걸맞는 4가지 맛깔진 소스-머스터드가 약간씩 첨가된 각종 드레싱 소스-를 같이 곁들여서 입맛에 맞는 걸로 찍어먹으면 된답니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생고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포인트는 바로 이것! 쿠킹호일에 싸서 구운 통감자가 불판 한켠에 같이 나오는 겁니다. 구운 감자에 사워크림 듬뿍 얹어 뜨거운 속을 파먹는 그 재미. 알만한 분은 다 아시죠?
맛은? 이름난 고기집이란 고기집은 섭렵했던 찬란한 회사생활을 거친 저희에겐 솔직히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니었죠. 우리나라 한우만 못해서 고기가 좀 질긴 편이었고 양념도 후추를 살살뿌린 소금장,참기름장,쌈장에 맨 소금간에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워낙 깔끔한 모양새와 독특한 소스를 함께 내주니 옛추억을 되살리며 재미삼아 구워 먹기에 좋았습니다. 거기에 인당 평균 이삼인분씩 들입다 고기만 먹어대는 우리 스타일과는 달리 구운 감자를 곁들이니 적은 양에도 적당히 배가 부르더라구요.
아마도 여대앞에서 이런 스타일의 고기집을 하면 깔끔하고 스타일리쉬한 걸 좋아하는 여대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불티나게 잘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사업 아이템은 꽁꽁 감춰둬야 하는건데.... ^^; ). 물론 고기의 맛과 양을 따지는 회사원들이 많은 곳에 차렸다가는 이틀을 못가서 망하고 말것이지만서두 말이죠.
☞ 어디서 먹나요?
[삐에라드 오 뵈프]조그만 도시인 샤모니의 기차역에서 시계탑과 맥도널드를 지나 가다 보면 작고 특색있는 상점들과 기념품가게,거리에 의자를 내어 놓은 이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는 번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거리의 레스토랑은 많은 관광객들을 위해 프랑스어,영어로 된 메뉴를 잘 보이게 내어 놓는 경우가 많죠.(심지어는 일어 메뉴도!) 어떤 집들은 벽에다 자기집의 스페셜 요리 그림을 그려 놓기도 한답니다.
저희는 'Le National'라는 레스토랑에서 세트로 선보인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세트메뉴에는 전채,메인요리,그리고 후식이 들어 있는데 전채로 먹은 샤모니풍 햄 모음과 치즈가 들어간 샤모니풍 샐러드도 아주 아주 맛있었답니다. 샐러드를 고기랑 같이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 사람들은 아쉽게도 먼저 야채를 다 먹어야 고기를 준다니까요.
가격 : 세트메뉴 98프랑 + 세금 별도. 음료수도 시켜야죠. '삐에라드 오 뵈프'는 최소 두사람 이상 주문해야 한답니다.
질긴 고기를 구워먹고 있으려니 자꾸만 점점이 흰점이 박힌 꽃등심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왜 외국음식들을 먹다 보면 자꾸 우리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들과 비교하게 되는지. 신토불이 꿈틀이부부의 촌스런 행각(조국사랑?)들은 어쩔수 없나봐요.
알프스 소년 소녀 꿈틀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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