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특수분장사’를 꿈꾸고 있었다. 누군가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분장에 각별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액의 상금을 탈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1988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 출전하면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능청스러운 말투로 청중을 웃기면서 덜컥 금상을 수상한 것이다.
나는 이듬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별난 여자’ 코너를 맡게 됐다.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스탠딩 개그(별다른 동작 없이 서서 하는 개그)에 도전한 나는 모노 드라마 하듯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는 연기로 89년 MBC 연기 대상 코미디 신인상을 받았다.
SBS로 자리를 옮겨 출연했던 ‘웃으면 좋아요’(93년)의 ‘철없는 아내’는 나에게 두 가지 선물을 안겨주었다. ‘개그우먼 박미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린 것과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의 남편인 이봉원씨와 처음 호흡을 맞췄을 때 선배 이상의 감정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서로 인간적인 정이 들었고 ‘실제 상황을 능가하는’ 열연을 펼칠 수 있었다.
극중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쓰러지며 무심코 뱉은 “이런 기분 처음이야!”가 시중에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철없는 아내’ 덕분에 93년 결혼에 골인했다.
‘웃으면 좋아요’ 이후 나는 정통 코미디에 출연하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출연기회를 양보한다는 의도에서였다. 대신 SBS ‘순풍 산부인과’ 같은 시트콤이나 KBS 아침 토크쇼 ‘행복채널’의 진행자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만족한다.
방송과 가정을 병행하는 와중에도 나는 학창시절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할 때 분장사 도움 없이 내 스스로 화장을 하는 것도 분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꿈은 두 사람의 이름을 건 전문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내가 분장을 도맡고 남편과 무대에 오른다면 두 가지 소원을 동시에 이루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