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여행이 일상화 보편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출국자는 약 480만명, 국내선 여행객도 연간 136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최근 있었던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의 항공여행 문화는 아주 후진적이라는 느낌이다.
최근의 캄푸치아 항공기 사건의 경우 정비 때문에 항공기의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승객은 폭언과 욕설로 소란을 피우고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조종실 문까지 열려고 했다. 그 결과 승객을 내버려둔 채 항공기가 출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만에서는 태풍 때문에 항공기가 5시간 지연된 데 항의하는 한국인 승객들의 집단 농성으로 경찰이 출동했다. 연초에 폭설로 항공기 운항이 마비돼 발생한 국내의 기내 소동 및 공항시설 점거 농성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천재지변이나 어쩔 수 없는 사고로 불편이 생겼다고 해서 승객이 공항이나 항공기를 점거 농성하는 일은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사건이다.
몇 년 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승객들의 하기(下機) 거부 농성과 관련해 한국을 위험지역으로 통보한 바 있음은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다. 기내 점거 농성과 승무원 또는 승객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거나 기내 기물을 파괴하는 등의 행위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항공여행 문화에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국내에서 보고된 기내 소동과 관련된 통계에 따르면 97년 24건이었던 것이 98년 46건, 99년 73건, 2000년에는 102건으로 3년 동안 약 4배로 증가했다. 특히 기내 소동은 항공기 안전운항과도 직결된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처럼 기내 점거 농성 및 소동을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불가항력적인 상황, 즉 천재지변이나 항공기의 기술적 문제와 관련된 불가피한 비행기 스케줄 조정에 대해서는 항공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한 이와 관련된 승객들의 소동에 대해서는 적절한 법적 대응책이 마련돼 있다. 절대안전이 보장돼야 하는 운항 중인 항공기 내에서 또는 이착륙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공항에서 항공기나 승객을 볼모로 벌이는 점거 농성은 운항 스케줄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항공보안이나 안전운항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신속한 항공수송은 승객이나 항공사의 기본적인 바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승객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물론이고 항공사와 공항의 노력도 필요하다. 항공사는 비정상 운항을 예방하고 기상 악화나 예기치 못한 문제 등으로 지연이나 결항이 불가피할 때에는 신속한 안내나 공항 현장안내를 강화하고 후속 서비스를 제공함은 물론 다음 스케줄에 승객에 대한 우선 탑승 순서를 지키는 등 노력을 기울여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항공사와 공항, 승객이 서로 이해하고 노력할 때 선진 항공여행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김종복(대한항공 법무이사·외교통상부 통상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