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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포럼]최평길/실패한 대통령들의 발자취

입력 | 2001-08-09 18:41:00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재임 마지막 날까지 실패한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실패한 대통령은 어떤 경우일까. 실패한 대통령은 오만에 가득 차고 자기 고집에 눈이 어두워 분별력이 없고 국정파탄과 자기파멸을 초래하는 비극적 대통령이다. 실패한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과 국민에게 반면교사의 거울이 된다.

특히 실패한 대통령 중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대통령들도 있다. 이들은 탁월한 능력으로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다가 집권 말기에 자기과신과 오만, 독선, 유아독존적 처신으로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경우가 많다.

42세에 최연소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보자. 그는 뉴욕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뉴욕시경찰청장과 뉴욕주지사를 지냈으며 스페인과의 전쟁에 기병대장으로 참전해 전쟁영웅이 됐다. 대통령 재임시에는 파나마운하를 건설하고 많은 국립공원을 만들어 환경보전에도 기여했다. 또 러일전쟁 후 러시아와 일본을 포츠머스회담에 끌어들여 한국과 만주는 일본이, 러시아는 현재의 영토보존, 태평양은 미국이 장악하는 태평양 동북아시아 국제질서 안정화를 도모한 기여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용인술에도 뛰어났는데 그가 기용한 국무장관 엘리후 루트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윌리엄 태프트 국방장관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밀어 당선시켰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퇴임 후에도 정치에 관여하다가 태프트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자신의 정치 노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에 출마했으나 후보로 지명되지 않자 진보당을 급조해 선거에 나섰다가 우드로 윌슨 민주당 후보를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실책을 범했다.

박사학위(존스홉킨스대 정치학)를 받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인 윌슨은 프린스턴대 교수와 총장, 뉴저지주지사를 지낸 미국 최고의 지성인 대통령이다. 용인술에도 뛰어나 연속 3회 대통령 후보에 오른 윌리엄 제닝을 국무장관으로, 훗날 대통령이 된 플랭클린 루스벨트를 해군 차관보로 기용했다. 개혁적 진보파인 그는 주지사 시절에 여성과 어린이 근로보호법을 제정했고 대통령 재임 중에는 누진세법, 연방준비은행법, 독과점 금지법을 제정해 개혁 대통령으로 평가받았다.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군비축소, 자유항해, 자유통상, 각국의 독립과 영토자주권을 인정한 민족자결주의선언, 국제연맹 창설 제의 등의 업적을 쌓아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국제연맹 창설에 관한 베르사유조약 체결에 상원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소속 의원을 대동하지 않았고 상하원 의원들에게 조약 체결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았으며 협조 및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윌슨은 취임 초에는 상원에 대통령 연락실을 두고 자주 방문해 법안 처리에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조력을 구하고 매년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관례도 만든 겸허하고 타협지향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집권 말년에 지나친 자기과신과 자만, 국회에 대한 오만한 태도 때문에 국제연맹 창설 제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국민을 상대로 설득 유세를 하다가 뇌일혈로 쓰러진 뒤 야당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은 구소련과 동유럽권 공산독재에 항거하고 동유럽 공산권 국가 몰락과 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그단스크 조선소 용접공 출신의 운동권 대통령이다. 이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고 민선 대통령이 된 그는 세계의 기대를 모은 대통령이었지만 집권 후 가족, 친지, 운동권 중심의 패거리 정치와 국가경제 관리 능력 부재로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대통령 선거에 재도전해 재기를 노렸지만 불과 1.01%의 지지를 얻는 데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진솔한 권력의 힘과 강력한 리더십은 타협과 설득에서 나온다는 이치는 교과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과신과 자만, 오만에 눈이 멀어 바른말 하는 참모를 떠나보내고 독선에 빠져 지내는 ‘나홀로 대통령’의 말로가 대통령 개인과 국가에 얼마나 위험한지는 오늘의 우리 대통령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김평길(연세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