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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추천 새책]'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입력 | 2001-08-13 13:52:00


이런 나라가 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깊고 푸른 험준한 산이 우뚝 솟아 있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검은 강이 유유히 흐른다.수천 년 전부터 존재한 유서 깊은 사찰에서는 고요한 영적 힘과 지혜가 배어 나오고,이상하게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세상 저쪽 끝의 신비로운 나라.

어느 나라일까?혹시 아프리카의 어딘가가 아닐까?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존의 밀림 어디? 그곳도 아니다.

그럼 어디인가? 한국이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이 아니고 파란 눈들이 지난 800년 동안 생각해왔던 한국이다. 우리는 그들을 같은 눈, 같은 코를 가진 대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전 청년사에서 나온 '서양인이 본 한국인 800년-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는 좀 딱딱한 사탕 같다. 얼른 보기에는 딱딱함 그 자체이지만 요리 빨고 조리 핥으면 혀 위에 놓고 굴리는 맛이 저절로 나는 바로 그런 책이다.

더구나 저자는 한국인이 아니라 서양인이다. 프랑스 태생으로 우연하게 한국을 알고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결혼을 하고, 현재는 한국외대 불어과 교수로 재직중인 불레스텍스 교수가 그 주인공. 그는 15년 전부터 약 2,000여 권에 달하는 고서적을 찾아 센 강변의 고서점, 로마 도서관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거나 시간 속에서 잊혀진 여행객, 옛 지도 제작자, 지리학자의 발자취를 찾아 떠돌아 다녔다.

◆ 왜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되었을까?

그래서일까? 이 책은 한 구절도 쉽게 쓴 흔적이 없다. 원래 논문을 절반 이하로 축소했는데도 자료의 방대함은 감탄을 자아낸다. 보면 알겠지만 흔히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찾아낸 기록에 의하면 유럽인과 한국인의 첫 만남은 1248년 초 몽골의 수도에서 열린 정종의 제관식에서였다. 이 제관식에 참여한 피아노 카르피노가 귀국해서 "솔랑기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말한 것을 뱅상 드 보베라는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솔랑기'는 만주어로 '무지개'라는 의미. 이어 1254년 몽골의 2차 고려 침입 이후에 몽골을 방문한 기욤 드 루브룩이 고려인 포로 20만 명 중의 몇 명과 외교사절을 만나 "체구가 작고 스페인 사람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이 사제들처럼 갓을 쓰고 다니는데…"라는 짧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 유럽과 한국의 만남은 거의 일방적이었다. 하멜이 조선을 탈출한 후 썼던 난파기가 해적판으로 흐르면서 한반도는 갑자기 낙타와 코끼리가 있으며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악어가 사는 곳이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런 일방적 묘사가 더 심해진다.

"남편이나 부모의 권한에 속하지 않은 여성은 주인 없는 짐승과 같아서 처음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샤를르 달레)

그렇지만 이에 못지 않은 찬사도 있다. 한반도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당시 유럽의 지성인이었던 볼테르는 '조선'을 '용감한 나라'로 그의 작품 중에 묘사했고,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에서 보물들을 훔쳐갔던 군인들은 상부에 보고한 기록에서 "뛰어난 인쇄상태에 감탄했고…놀랐다"라고 적고 있다.

◆ 한국인, 쓸쓸한 왜가리?

이런 흐름에서 저자는 서양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양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해 낸다. 문화(문명)와 자연(미개함)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착한 미개인과 동양의 현자'는 이런 최초의 이미지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함축한 것이다.

어쨌든 한반도는 푸른 눈에 먼 시간 속의 나라였다. 그래서인가? 시인이자 주일 프랑스 대사였던 폴 클로델은 1924년 5월 한반도를 여행하면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감미롭도록 신선하고 가벼운 한국의 대기, 신선한 아침의 나라. … 일본은 마법에 걸린채 잠겨있는 정원이다. 한국에서 나는 최종적 결정체로 이루어진 장대한 산들을 보았다. 그

리고 왜가리처럼 쓸쓸한 한국인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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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aras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