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저녁 도쿄대 교양학부 캠퍼스에서 한국의 옛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주(黃錦周) 할머니의 증언집회가 열렸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후소샤(扶桑社)의 역사교과서를 문부과학성이 합격시키자 위기감을 품고, 이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는 운동을 해온 학생들이 기획한 집회였다.
처음으로 듣는 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학생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한 학생이 “후소샤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뒤 집회장은 충격에 빠졌다. 황 할머니가 “우리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교과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외치며 들고 있던 교과서의 표지를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새삼스레 황 할머니의 강한 분노와 역사교과서 문제의 중대성을 깨달았다.
오늘은 21세기 최초의 8월 15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일관계는 최근 나쁜 상태에 빠져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주된 원인이다.
나는 이 책임이 모두 일본측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정부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1985년)한 다음해에 관방장관 담화로 ‘근린제국의 국민’에게 ‘오해와 불신’을 줄 우려가 있다면서 참배를 중지했던 일이 있다.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은 당시 일본정부의 약속을 믿어온 이웃국가를 배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교과서 문제도 근린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배려해 교과서를 기술한다는 ‘근린제국(諸國)조항’(1982년)과 적절한 역사인식에 입각해 교육하겠다는 한일공동선언(1998년) 등의 국제적 공약을 위반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전후 반세기 만에 침략 피해국들로부터 직접 책임추궁을 당하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내셔널리즘이 강해진 직접적 원인은 침략책임 추궁에 대한 반발이었다. 여기에 최근 10년은 거품경제 붕괴와 장기불황으로 경제성장의 신화가 종언을 고했음을 모든 일본인이 실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냉전의 ‘승자’인 일본이 과거의 침략책임을 추궁당하고, 더욱이 ‘경제 패전’까지 겹치면서 이중의 ‘피해의식’을 갖게 되자 ‘일본인의 긍지를 회복하라’는 국가주의자들의 외침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1999년 여름 신가이드라인 관련법, 국기국가법 등 일련의 국가주의적 법률이 제정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역사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는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의 비판세력은 후퇴를 거듭했다. 정계는 물론이고 미디어 저널리즘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우경화’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현대 일본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제국(帝國)의 부정적 유산’-그 핵심에 천황제가 있다-을 청산하고, 제국주의 일본과의 연속성을 끊어버림으로써 동아시아 이웃들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 그리고 동아시아 민중간의 상호신뢰를 기초로 이 지역에 항구적인 평화질서를 구축하는 희망 말이다.
최근 몇 년간 비판세력이 열세에 처하긴 했지만 반격을 가했던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를 단죄하는 여성국제전범법정’은 가해국 일본의 여성조직이 제창해서 실현된 것으로 국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과 북한이 합동검사단을 구성하고 위안부제도를 ‘인도에 관한 범죄’로 규정해 쇼와(昭和)천황에게도 ‘유죄’ 평결을 내렸으며 동아시아 각국과 시민들이 전쟁범죄에 관해 공통인식을 형성해 이 지역의 평화질서 형성을 위한 모델을 제시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일본 각지에서 후소샤판 역사교과서 채택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채택률을 거의 제로(0)에 가깝게 만든 것은 일본사회의 양식이 마지막 선은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였다. 재일 한국시민과 일본 시민이 협력해서 채택을 저지하고, 서로 기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황 할머니는 “나쁜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일본정부”라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일본정부는 일본국민의 정치적 대표자다. 일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일본정부의 행위에 일정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다. 일본정부는 식민지배의 잘못에 대해 북한에는 전혀, 한국에는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한민족의 여러 사람과 우정과 연대를 맺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일본 군국주의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며 ‘전후책임론’을 주장하면서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해 온 양심적 지식인이다.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역사비평사·1999)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