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란강아 말하라’와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등으로 잘 알려진 독립투사 출신 작가 김학철(金學鐵·84)옹.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으로도 알려진 그는 현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종양 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이다. 중국 옌볜(延邊)에서 살아온 그는 6월 1일 윤세주(尹世胄) 열사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겨드랑이 근처에 생긴 감염성 종양 때문에 발이 묶인 것.
14일 입원실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40여일간 음식 대신 영양주사로 버텨온 탓인지 수척했다. 그러나 조선족이나 탈북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내 목소리가 격앙됐다.
“그들도 다 동포 아닙니까. 국제 여론은 관심을 갖는데 오히려 한국정부는 이들의 인권보호에 앞장서지 않고 남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길수가족 탈북사건’이후 더욱 삼엄해진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와 조선족들의 각박해진 인심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김옹은 “잊혀져 가는 이들에게 관심과 도움이 절박한 때”라고 중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김옹이 관심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하루는 중국군과 베이징(北京) 남쪽 타이싱(太行)산 근처 일본군 기지를 습격했는데 거기에 4, 5명의 군위안부가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1941년 교전 중에 부상해 일본군 포로가 되기 전까지 약 1년 동안 이들을 돌보면서 군위안부의 참상을 상세히 들었습니다.”
매일 20∼30명의 일본군 병사를 상대하느라 따로 밥 먹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아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웠던 이야기, 한결같이 심한 성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연들….
김옹은 격앙된 목소리로 “일본은 지금까지 이들에게 적절한 사과 한마디 없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제 신사참배까지 했다니 한일관계가 원만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이성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에도 훌륭한 진보적 지식인이 많아요. 하루아침에 일본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는 거고…. 이들과 함께 연대해 매듭을 풀어나갈 수 밖에요.”
김옹은 1916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했으며 1938년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중국 조선의용대에 입대했다. 1941년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총상을 입고 포로가 돼 나가사키(長崎)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45년 풀려나 서울에서 잠시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 이어 1946년 월북해 노동신문 기자로 활동하다 195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김옹은 이달 말 다시 옌볜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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