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15가 되면 통일축전이라는 행사가 벌어지곤 한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식의 말잔치와 요란한 선전행사가 있지만, 끝나고 나면 ‘반통일세력’에 대한 비방만 남고 북한 땅의 인권유린과 기근은 계속될 뿐이다. 사실 지금 통일축전을 벌이는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법절차에 따른 통일협상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의 독일통일은 그해 3월18일 동독에서 실시된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기민당 중심의 연합이 압도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루어졌다. 우리도 평화통일을 논하려면 북한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고, 북한 주민의 자유 선거로 선출된 대의기관의 결의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 땅을 지배하는 권력자의 의지에 좌우될 일이 아니다.
통일은 왜 해야 하나.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압제와 개인숭배의 망령에 사로잡혀 노예로 전락한 북한 동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권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만난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것이다. 민족을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북한 동포가 하루빨리 압제와 기근에서 해방되어 자유시민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염원치 않을 수 없다.
통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 주민의 자유선거를 통해서 해야 한다. 북한에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신앙과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자유로운 선거를 실시해 대의기관을 구성하고, 그 대의기관에서 통일헌법이 채택되고 국민투표로 승인받아야 한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통일국가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나. 국가통합의 방식에 의하든, 대한민국 헌법의 수용방식에 의하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헌법체제가 아니면 안되도록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현재 북한의 지배체제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인권에 관한 문명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체제가 용인될 수는 없다.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을 하려면 첫째,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가 튼튼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경쟁력을 잃어 북한동포를 먹여 살리기는커녕 스스로 살기도 힘들어진다면 통일의 부담을 지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안보를 소홀히 함으로써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독일 통일이 되기 전 1985년 기준으로 동독은 소련군 38만명과 동독군 18만명을 합한 56만명의 병력을 가진 반면 서독은 미군 24만6000명 등 나토군 40만4000명과 서독군 48만6000명을 합해 89만명의 병력을 보유하는 등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보였다. 반면 오늘날 한국은 북한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인데다 국민총생산 중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감소해 올해에는 2.7%로 전세계 평균 4.1%에도 현저히 미달하는 형편이다.
둘째, 북한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차 북한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되려면 최소한의 인권이나마 보장되는 사회로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당국이 지원을 요청해 올 때마다 북한주민이 거주이전, 신앙, 통신, 직업활동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자유가 확대되도록 연계시키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
셋째,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일본과의 동반자 관계를 확충해야 한다. 중국 러시아와의 우호협력을 강화하되, 북한땅이 불량국가로 남아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보다는 자유와 번영의 통일한국을 이루어 교역과 교류가 급신장하는 것이 자기네 국익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점을 정부차원과 민간차원에서 잘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진정 민족을 사랑한다면 통일준비와 함께 지금 당장 숨을 곳도 없고 도망칠 곳도 없는 처절한 상황에서 몸부림치는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치 않으면 안된다. 만일 정부나 지도층이 북한당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탈북자 보호에 미온적이라면 인간의 도리와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처사로 1180만 청원서명자들의 비판과 국제사회의 경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문제든 인권문제든 매사 진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고,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김 상 철(변호사·탈북난민실천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