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현실에서 기업 세무조사는 ‘조세정의’라는 명분과 함께 ‘괘씸죄’에 대한 응징의 수단으로 쓰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정권에 밉보인 기업인들에게 세무조사는 ‘염라대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하고 ‘탈세범’이라는 낙인이 찍혔으며 때로는 영어(囹圄)의 몸이 돼야 했다.
검찰이 16일 국세청 고발을 토대로 5명의 신문사 전 현직 경영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신문사도 예외일 수 없음을 보여줬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탈세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를 깔고 벌인 세무조사는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91년 현대그룹과 고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 일가, 93년 포항제철과 박태준(朴泰俊) 전 회장에 대한 조사 등은 시작단계부터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성 짙은 세무조사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괘씸죄 또는 미운털〓정 명예회장은 6공화국의 역점사업이던 경부고속전철 건설을 앞장서 반대했다. 그가 은밀히 대통령선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당시 정권핵심부가 알고 있었다는 후문.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조사를 받은 박 전 회장은 김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줄곧 마찰을 빚었다.
언론 세무조사의 주요 대상이라는 인상을 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의료개혁 실패 등 현정권의 실정을 집중비판함에 따라 정권측을 불편하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례적인 조사강도와 여론몰이〓국세청은 장장 140여일 동안 단일업종으로는 최대 조사인력을 투입, 23개 언론사에 대해 고강도조사를 벌였다.
현대 조사는 1361억원의 추징세액 중 1200억원을 되돌려줘야 할 정도로 무리한 내용이 많았음이 뒤늦게 입증됐다. 포철 조사에서 국세청은 조사기간을 1개월 이상 연장해가며 박 전 회장 개인재산과 50여개 자회사 및 협력업체를 샅샅이 뒤졌다.
세무조사는 받는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기업이미지에 큰 타격이 가해지므로 조용히 진행하는 것이 관례. 그러나 현대 포철 언론사 등에 대한 조사는 사전에 공개됐고 친여(親與)언론매체를 중심으로 ‘마녀사냥’에 가까운 대대적인 여론몰이가 있었다.
▽심한 후유증〓세무조사를 받고 도산한 기업도 적지 않다. 70년대 초반 소주업계 1위를 달리던 삼학소주의 사례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삼학소주는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집요한 세무조사를 당한 끝에 문을 닫았다.
현대는 “돈이 없어 추징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텼다가 정부로부터 온갖 제재를 받는 바람에 간판기업인 현대건설이 1차부도를 냈었다.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이 조세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