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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 영화를 맛있게 만들어 주는 책들

입력 | 2001-08-17 11:15:00


◆ 스크린 감동은 아는 만큼 온다!

27억 원의 제작비, 관객 800만 명 돌파. 영화 ‘친구’의 기록 앞에서 콧대 높은 문학도 기가 죽는다. 이미 영화는 흥행성에서 문학을 저만치 따돌렸다. 여기서 굳이 대중문학이냐 본격문학이냐를 구분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안 팔리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문학의 부진을 본격문학에서 대중문학으로, 다시 영화로 옮겨가는 ‘천박한 독자(혹은 관객)들’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최근 영화를 요리조리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요리해 놓은 영화 관련 책들을 보다 짚이는 데가 있었다. 이 책들은 같은 영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맛보게끔 독자이자 관객들을 유도한다. 단순히 영화 줄거리만 요약해 놓은 책부터 지독히도 주관적이고 난해한 평론, 교과서나 다름 없는 영화이론서, 영화의 특정 장면만 분석한 책,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이면을 보여주는 책 등 각자의 눈높이에서 고를 수 있는 영화 관련 책들이 다양하다. 모두 영화산업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먼저 윤문원씨의 ‘애수에서 글래디에이터까지’에서 깊이 있는 해설이나 분석력을 기대했다면 실망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에도 이해가 안 된 부분들, 때로는 물어보고 싶어도 창피해서 그냥 넘어간 대목들을 해결해 준다. 예를 들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나를 미스터 키팅이라 부르거나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 부를 수 있다”는 대목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책은 작자가 월트 휘트먼이며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그에 대한 존경과 추모를 담은 시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또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영화 ‘필라델피아’의 오프닝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스트리트 오프 필라델피아’는 인상적이지만 막상 “난 상처 받고 짓이겨져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네”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전부 이해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는 가사 전문이 실려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면 때문에 제대로 영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감칠맛 나는 대사를 음미할 수도 없어 누구나 다시금 영화내용이나 장면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영화전문지 ‘스크린’ 편집장인 아네트 쿤이 쓴 ‘이미지의 힘’은 영화뿐만 아니라 사진까지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도구는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악사 조와 제라가 여장을 하고 등장하는 시퀀스를 여러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영화에서 나타난 ‘복장전도’에 대해 일장 강의를 한다. 또 우리에게는 생소한 성병 선전영화가 한 장르로 자리잡던 1910년대 후반 서구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쿤은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이미지와 그것의 작용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와 사진을 이용했을 뿐이다. 결코 친절하지는 않지만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길러주는 책이다.

통신상에서 듀나(DJUNA)라는 필명으로 활약하는 SF작가의 ‘스크린 투덜대기’는 감칠맛 나는 영화칼럼 모음이다. “이 영화 보지 마요, 웩!”하는 식의 솔직하면서도 후련한 통신언어 스타일을 따라서 마치 저자가 모니터 위에 수다를 떨어놓은 것 같다.

저자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의 ‘취향 물려받기’란 글을 보자. “우리는 영화만을 수입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평판까지 함께 수입하지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영화의 평판은 영화보다 먼저 들어옵니다.” 더 큰 문제는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에 대한 정보만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지도 않고 쓰는 평?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평점을 매기는 비디오 가이드 책에서 흔히 저질러지는 일이다. 심지어 같은 비디오 가이드북에서 제목이 같은 영화를 두 번 언급하고 서로 다른 평점을 주는 ‘잔인무도’한 실수까지 스스럼 없이 저지른다. 결론은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책을 보는 대신 일단 영화부터 보라”는 것.

눈 높이대로 영화관련 책을 고르는 독자를 위해 다른 리스트도 있다. 본격 이론서인 ‘영화서술학’(동문선), 일본영화를 작가주의 장르 역사라는 측면에서 정리한 ‘일본영화 다시 보기’(시공사), 영화 속의 중국 현대사를 재정리한 ‘현대중국, 영화로 가다’(지호), 제목 그대로 ‘할리우드의 영화전략’(을유문화사), 카메오 출연(30편)으로 유명한 영화 담당기자가 쓴 한국 영화계 이야기 ‘시네토크 세니 클릭’까지 골라 잡으시라.

ㆍ 애수에서 글래디에이터까지/ 윤문원 지음/노블웍스 펴냄/ 432쪽/ 1만3000원

ㆍ 이미지의 힘/ 아네트 쿤 지음/ 이형식 옮김/ 동문서 펴냄/ 182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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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 듀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3쪽/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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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동아 298호 2001.8.23·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