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영화의 주역 여배우들은 ‘적정 연령’이 정해져 있다. 그 나이를 넘기면 영화제작자들은 주인공으로 발탁하기를 꺼린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탓이다.
90년대 초반 그 연령은 점점 낮아졌다. 주인공 여배우의 나이는 20대 초반에서 10대 후반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도연, 이영애, 이미연 등 30대 안팎의 배우들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적정 연령’은 급속히 위로 올라가고 있다.
31일 개봉되는 멜로 영화 ‘베사메무쵸’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이미숙은 올해 41세다. 아무리 멜로 여배우의 ‘적정 연령’이 높아졌다고 해도 이같은 캐스팅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미숙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얘기다. 영화계의 ‘상식 파괴’에 나선 그와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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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영희〓‘베사메무쵸’의 두 주인공은 결혼 10년차인 중년 부부 철수(전광렬)와 영희(이미숙).
“이 작품은 제가 지난해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 참여, 감독과 함께 영희란 인물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같이 상의해왔어요. 내 남편 철수씨(전광렬)는 나중에 캐스팅됐고.”
이 작품은 좁은 18평 아파트에서 네 아이를 키우지만 꿈도 있고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믿는 한 부부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와 그 극복 과정을 담고 있다.
증권사 과장인 철수가 주가 조작에 나서라는 간부의 지시를 거부해 해고당한 데 이어 철수의 빚 보증 실패로 1억 원을 갚지 못하면 소중한 보금자리마저 차압될 지경에 이른다.
괴롭고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던 중 이들 부부에게 ‘나와 하룻밤만 자면 1억 원을 주겠다’는 ‘은밀한 유혹’이 주어진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데미 무어에게 하룻밤의 대가로 100만 달러를 주겠다던 영화 ‘은밀한 유혹’과 비슷한 설정이다.
“그 영화는 봤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세태라면 우리 실정에서도 그런 유혹이 실제로 있을 법하지 않은가요?”
▽여성이 강하다〓세태와 관련된 비슷한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극중 이미숙의 남편 철수가 자신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의 아내와 정사를 하던 중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결국 정사를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전 이 작품의 시사회에서는 “절반쯤 갔으니 5000만원은 받아야 한다”는 등의 농담이 오갔다.
“마음먹었다면 어떻게든 결과를 얻어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영희는 여러 차례 망설이다 눈물 없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른 남자를 받아들여요. 그런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은밀한 유혹’같은 것은 존재하지 말아야 되겠죠. 생각만 해도 오싹해요.”
배우가 아닌 이미숙 자신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 마지막 부분에 부부가 손을 잡는 장면이 나오지요. 저는 두 사람의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그 기억이 따라다닐 것 같아요.”
▽단지 그대가 40대라는 이유만으로〓98년 이재용 감독의 ‘정사’는 결혼, 출산, TV 드라마 출연 등으로 공백기를 가졌던 그에게 영화배우로서 생명력을 확인해준 작품이었다.
“극장까지 찾아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배우, 감독, 내용 세 가지 중 끌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영화를 보러오지 않지요. 텔레비젼을 켜면 언제든 볼 수 있는 TV드라마보다는 치열한 싸움이 수반되는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승부를 걸고 싶어요.”
그는 “이제 ‘왜 40대 여배우는 안 되느냐’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면서 “난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받는 꿈을 갖고 있는 할 일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꼭 10년 뒤 50대에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