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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화제]부산~서울 무박5일 질주 윤장웅씨

입력 | 2001-08-20 18:38:00


‘마라톤 영웅’ 황영조에게 물었다.

“닷새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500㎞를 달리거나 걸을 수 있는가. 물론 식사는 하루 세 번, 물은 수시로 마실 수 있다.”

황영조는 기가막힌 듯 잠시 말문을 열지못했다. 그러더니 “허 참,사람이 어떻게 닷새동안 자지 않고 달릴 수 있나. 4시간정도만 달려도 힘이 들어 달려오는 차바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윤장웅씨. 올 마흔 여섯. 한국공항공단 항공전자처 전파탐지부 과장. 키 1m69에 몸무게 69㎏. 바로 이 사나이가 ‘마라톤 프로’ 황영조도 불가능하다는 일을 해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윤씨는 지난 6월25일 오전 9시48분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해 6월29일밤 밤 9시7분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정확히 107시간 19분. 물론 잠은 한숨도 자지 않았다. 먹은 것은 하루 세끼 밥과 목과 가슴이 탈때마다 벌컥벌컥 마신 물이 전부.

지난달 23일 그를 만났다. 그는 까무잡잡한 얼굴을 빼놓고는 보통사람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앉자마자‘정말 닷새동안 잠을 한숨도 안잤는지’부터 물었다.

“TV를 보셨겠지만 KBS 등 3개 방송사 카메라가 출발 이틀전부터 나를 따라 붙었습니다.심지어 화장실에 갈때까지….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꺼풀 하나 내릴 수 없었습니다. 잠이 쏟아질때마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는 왜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일을 사서 할까.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26회나 완주한 마라톤광이다.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랄까.

“저의 경우엔 마라톤이 더 힘이 듭니다.왠지 불안하고 쫓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먼 길을 달리면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힘들면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산과 들을 달리며 온갖 새소리를 듣고 풀 꽃 나무들을 볼 수 있으며 흙냄새 사람냄새도 맡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풀코스를 뛸때는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울트라마라톤(42.195㎞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것)을 할때는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윤씨는 이미 지난해 8월 강화도에서 경포해수욕장까지 316㎞거리를 68시간10분동안에 잠을 자지 않고 달렸고 올 5월에는 일본을 횡단하는 나고야-가네자와 270㎞ 코스를 46시간24분에 달렸다)

그는 이번에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나흘째 되는 날. 약 350㎞지점에서 머릿속이 갑자기 하얗게 텅 비더라는 것. 당시 지원팀에 있던 이영길 한국공항공단대리는 이 당시의 윤씨 모습을 ‘눈동자가 풀리고 누가 뭘 물으면 엉뚱한 대답을 하는 등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결국 지원팀 일부에서는 “그만 해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윤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때가 고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침 하늘에서 천금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로 저는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강화도에서 경포해수욕장까지 한반도횡단(316㎞) 할때 사흘째 되는날 새벽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둔내에서 태기산 넘어갈 때 였는데 파랗고 빨간 도깨비 두 마리가 20-30분동안 계속 따라왔습니다. 헛것을 본 것이지요.주변의 나무들도 모두 사람으로 보이고…. 결국 정신력으로 이겨냈습니다.”

뜻밖에도 윤씨는 이번 ‘무박5일 마라톤’을 대비해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회사일 하랴 코스 답사하랴 눈코뜰새 없이 바빠 연습할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한 것은 81년부터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뛰는 ‘새벽조깅’. 그리고 토 일요일을 이용한 장거리 주파. 서울 강서구 염창동 24평 전세아파트에 사는 그의 조깅 코스는 염창동하이웨이 주유소-화곡동 뒷골-까치터널-고려병원입구-목동오거리-목동사거리-CBS방송앞-이대목동병원서 유턴-목동아파트5,4,3,2,1단지-인공폭포-용왕산에 이르는 약 15㎞코스.

도대체 그는 하루에 잠을 몇시간쯤이나 잘까. 부인 조순화(45)씨는 “보통 12시나 돼야 잠자리에 들지만 4시면 틀림없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원래 저는 잠이 없는 체질이예요. 직장에서 한번도 졸거나 낮잠을 잔적이 없습니다. 추위도 거의 타지 않습니다. 게다가 밥도 아주 적게 먹습니다. 고맙게도 장거리마라톤 하라고 하느님이 저한테 이런 체질을 주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잠을 자지 않고 도대체 얼마나 걷거나 달릴수 있을까. 한국체육과학원의 이종각박사는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즉 군 특수부대 같은 경우 무거운 배낭과 장비를 가지고도 300㎞를 잠안자고 행군하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는 것.

윤씨는 늘 몸을 움직인다. 대학도 직장생활하면서 마쳤다. 휴일에는 집에 거의 없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마라톤대회에 한달 두 세번 꼴로 참가해 풀코스를 달린다. 대회가 없을땐 한강둔치 등에서 또 달린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고 각종 인터넷 마라톤사이트를 뒤진다.

그는 먹는 것도 과일 등 채식을 주로 한다. 그것은 그가 매달 정기적으로 하는 헌혈(7월현재 90회) 때 좋은 피를 주기 위해서다. 그의 헌혈은 일반인들이 흔히 하는 피만 뽑는 ‘전혈’이 아니라 혈액속에서 혈장만 빼내고 피는 다시 제 몸속으로 돌려 보내는 ‘혈장헌혈’이다. 혈장헌혈된 피는 백혈병 어린이들에게 쓰인다. 윤씨는 지난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유공장 금장’을 받았다.

부인에게 물었다. “남편이 가정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닙니까? 휴일에는 거의 집에 없고….” 부인 조순화씨가 대답했다. “옛날엔 화도 많이 났지만 이제는 제가 먼저 나가라고 등떼밉니다.” 큰아들 윤호(19)군도 거들었다. “아버지가 존경스럽습니다만 42.195㎞이상은 달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건강도 신경쓰셔야죠”

윤씨의 생각은 어떨까. “글쎄요.무박6일은 몰라도 무박5일 코스에는 한번 더 도전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도 달려보고 싶고…. 우선 올 추석연휴(9.30-10.3)때 지난해 달렸던 315㎞ 한반도 횡단부터 하려 합니다”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