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49년 11월 태어나 생후 7개월 만에 6·25전쟁을 맞았다. 3년 동안의 부산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겨우 한글을 읽고 쓰게 됐을 때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쓰게 했다.
‘나는 어머니와 형 둘, 그리고 누나가 셋 있습니다. 사는 곳에는 방과 부엌이 하나씩 있고 부엌 위에는 큰형이 쓰는 다락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때 북한군에 끌려가셨고 그래서 우리는 이 조그만 집에서 아버지만 빼놓고 나머지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정말 쓰기 싫은 편지였지만 어머니는 나를 달래 나와 가족에 대한 소개와 몇 가지 주변 이야기를 쓰게 했다. 다음날이면 나는 어머니를 따라 경복궁 옆 개천변 어딘가에 있던 양친회 사무실로 가 손에 꼭 쥐고 있던 편지를 제출했다. 그러면 사무실 직원이 수고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매월 약간의 돈과 두툼한 잠바, 양말, 털실로 짠 모자 등 구호품을 안겨 주었던 기억이 난다.
1950년대 전쟁을 거친 세대는 물질적으로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구호품은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고 구호자금은 우리 6남매의 학용품을 조달하는 데 활용되었으니 혼자 자식들을 키우시던 어머니가 어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4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1996년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일간지에서 양친회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 어린이를 돕던 양친회가 이제는 외국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기 시작했다는 기사였다. 이후 나는 투이엔이라는 베트남 어린이를 후원하게 되었다. 편지를 통해 투이엔 가족의 형편이 50년 전 우리 가족과 너무나 흡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 마치 옛날의 나를 주인공으로 한 흑백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경복궁 옆 개천가를 걸어 내려오며 느꼈던 구호품 꾸러미가 내게 안겨줬던 그 따뜻하고 흐뭇했던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올해 초 양친회의 후신으로 불우한 외국어린이를 돕는 민간단체인 ‘플랜 코리아’를 통해 알아보니 실로 한심한 형편이었다. 양친회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1953년부터 ‘플랜 코리아’로 이름을 바꾸며 철수한 1979년까지 26년간 매년 2500명의 한국 어린이가 후원을 받았으나, 현재 ‘플랜 코리아’의 후원자는 1000명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플랜 인터내셔널’의 후원국 14개국 중 꼴찌라고 했다. 후원자가 6만명인 이웃 일본에 비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올해 2월 나처럼 양친회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플랜 코리아’의 후원활동을 몰라서 아직까지 후원자가 안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양친회의 사랑을 계속 이어가자는 뜻으로 ‘내리사랑 양친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반응은 의외로 냉담해 실망도 적지 않았다. 한국이 전쟁의 어려움을 겪고도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외국 자선 단체들의 도움도 큰 역할을 했는데…. 이젠 우리도 도움을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모임의 회원 중 한 명이 ‘플랜 코리아’의 도움을 받아 과거 자신을 도와준 미국인 후원자를 30년이 지난 뒤 찾을 수 있었다. 중학생 때 도움을 받았던 그는 나중에 꼭 감사의 뜻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후원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찾은 후원자가 후원을 받았던 그와 나이가 같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성공해 농장을 운영하는 그 회원은 이번달 말 미국인 후원자와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한다. 정말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의 사연이 얼마 전 동아일보에 소개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플랜 코리아’에 후원을 문의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늘 부러워했던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것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기부문화와 자원봉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연말연시 방송과 신문에서 호소하면 일회성으로 내고 마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다.
자녀들의 인성교육을 걱정하는 부모들은 지금부터라도 남을 위해 베푸는 마음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우리도 차츰 선진국 못지않은 기부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장 훈(내리사랑양친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