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내놓은 ‘한국경제 2010년 비전’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내에 561만명이 실직 또는 이직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한 가족 수를 4명으로만 잡아도 두 가구에 1명꼴로 직업과 관련한 신상변화를 겪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전망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도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가 됐다.
본래 한국인들은 자신의 직업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평생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크나큰 자랑이요, 복덕(福德)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미련’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좀 더 많은 보수를 찾아 철마다 옮겨다니는 것이 나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며 내 몸값을 올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30년 넘게 한 회사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나는 거의 ‘골동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내 동년배들 사이에서야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입사해 ‘뼈를 묻는’ 각오로 일해온 것이 당연했지만 요즘 신세대들은 그것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려니 하는 모양이다.
내가 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나고 일 잘해서가 아니라 분명 과분한 복을 받은 덕택이다.
내게도 여러번의 고비와 유혹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입사 5년차이던 무렵 한 은사님에게서 받은 가르침이다. 이 분은 훗날 한국 경제발전에 향도 역할을 하며 총리까지 지냈다. 나의 대학지도교수였으며 코오롱에 입사할 때 추천서도 써주신 분이다. 그 무렵 욕심도 생기고 마침 다른 회사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있어 내심 고민이었다. 사정을 들으신 선생님이 내게 주신 말씀은 ‘한 5년쯤 뒤에 다시 찾아오게나. 적어도 10년은 돼야 자신의 회사를 이해할 수 있고 사회를 보는 눈도 생기는 법일세. 10년의 이력서를 한 줄 더 붙여 다시 오면 그 때가서 내가 추천장을 써줌세’였다.
선생님 말씀처럼 한 5년 더 경험을 쌓고 실력을 키우자는 생각으로 소임을 다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회사로부터 능력도 인정받을 수 있었고 스스로도 보람차게 일하는 모습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30년이 넘도록 ‘한 줄짜리 이력서’를 갖게 됐다.
이런 일은 이제 빛 바랜 흑백영화에 나오는 구닥다리 스토리가 되는 것으로 그만일까. 독일 루르에 있는 노키아 휴대전화 공장 직원들은 원래 석탄 캐는 광원이었다. 세월이 변하면서 석탄회사는 TV공장으로, 다시 휴대전화 공장으로 변신했다. 업종은 변해도 직원은 재교육을 통해 계속 같은 사람들을 고용한 것이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핵심기술 인력을 바꾸는 비용이 유지비용의 4배나 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인력 대체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 체화(體化)된 지적자산의 유출 등을 고려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회사도, 직원 개개인도 모두 인력의 들고 남에 신중해졌으면 한다. 월스트리트식 합리경영만큼이나 ‘로열티 경영’도 글로벌 스탠더드다.
내가 누렸던 행복과 보람, 그것을 내 후배들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유 명 렬(코오롱정보통신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