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림 감상이란 자기 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는 주관적인 체험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설치작품인 ‘텔레비전 탑’을 보면서 “저거 팔면 돈 되겠다”고 감탄한들 어떠랴. 또 인체를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린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멀쩡한 교복치마를 줄여입는 10대 ‘깻잎머리 반항아’를 떠올린들 무슨 상관인가.
이 책은 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대가 30여명의 대표작들을 골랐다. 고흐 렘브란트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베이컨 마그리트 샤갈 칸딘스키 뭉크 피카소…. 이들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떼어내 소란스런 일상의 벽에 걸어둔다. 그리고 발랄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미술평론의 엄숙주의를 꼬집는다.
저자 김영숙씨(37)는 ‘김치국물 묻은 손으로 가계부를 적는’ 주부다. 출장가는 남편따라 해외 미술관을 들렸다가 그림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이제는 목욕탕에서 여자들의 나신을 흘깃거리면서 루벤스와 쿠르베의 누드화를 떠올릴 정도.
이 책은 ‘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가 이룬 미술평의 대중화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그림의 해석자가 될 수 있다는 ‘미술감상의 민주화’를 꾀하는 것이다. 인상비평 수준의 작품 해석이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러나 때로는 단순한 촌평에서 비범한 안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대별 누드 작품이 주는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아이 참, 뭘 보세요. 난 창피해서 딴 데 볼래”(그리스 조각의 누드), “야, 나 좀 봐”(마네의 누드), “너, 나 없이 살 수 있어?”(클림트의 누드).
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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