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자족적 특성을 강조한 구조주의의 득세 이후 작가의 삶을 추적하는 고증학적 작업의 가치는 계속 폄하되어 왔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원적으로 대립하는 별도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자서전이나 전기 연구들은 과거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작가를 추상적인 주체로서 신격화하지 않는다.
랭보(1854∼1891)는 프랑스의 상징파 3대 시인 중 한사람으로 ‘취한 배’ ‘지옥에서 보낸 한철’ 등의 시를 남기고 37세에 요절했다.
저자인 삐에르 쁘띠피스도 이 책에서 지금까지 박제된 랭보의 신화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을 검증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는 실증적 작업을 시도한다. 그는 ‘정확성과 명확함에 있어서 만은 인정받겠다는 야심을 지닌 전기를 제시’하고 ‘미리 설정해 놓은 이론에 구애됨이 없이 당시의 증언이나 서류들에 근거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의지를 표명한다.
이 책은 첫눈에 지루할 수도 있을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도처에서 끊임없이 시적 오르가즘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소문 대신에 증거를 확보하고 주관적 알리바이 대신에 객관적 증언을 배치하는 문헌학적 성실성의 일관성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연속성을 갖게되고 이른바 ‘문학적’ 문체로 미화되는 데서 오는 일종의 메스꺼움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베를렌느와의 비정상적 관계의 파국을 다룬 10장 ‘7월10일의 드라마’가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음 알게 된 듯한 긴장상태를 촉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절교 이후(베를렌느 뿐 아니라 시와도) 랭보가 ‘햇볕에 미쳐서’ 헤메는 아프리카에서의 10년 삶을 재구성한 후반부는 전문가들에게는 가치있는 학적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애호가들에게는 ‘바람의 구두’를 신고 한없이 걸어가는, ‘걸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 한 사내의 방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1891년, 죽음이 임박하여 랭보는 외친다.
“절단 수술은 절대 하게 하지 마세요. 장기를 잘라 버리고, 절개하고, 조각조각 내는 것은 하더라도 절단 수술은 하지 마세요. 설사 죽게 된다해도, 수족이 덜 달린 채로 사는 것보다는 나아요.”
다리는 결국 절단됐고 그는 죽었다. 그러나 자신의 시는 다리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 것 같다. “시인 랭보의 삶은 그가 사망한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음을 연대기는 보여주고 있다”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장정애 옮김, 원제 ‘Rimbaud’(1982년)
황의조(문학평론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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